멋들어지게 살던 어느 날
2019년 봄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내가 꽤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한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미국,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쿠웨이트 등 해외 클라이언트와의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했다. 몇십억에서 몇백억 원이 달린 프로젝트의 실무자로서 점점 더 규모가 크거나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다양한 나라로 출장 다니며 현지 클라이언트와 협상하고, 좋은 호텔에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려운 프로젝트일수록 그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빠르게 배우고 경험해 가며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좋았다. 나의 하루하루가 그 전날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 무렵 나에게 이전보다 더 큰 프로젝트가 할당되었다. 3백~4백억 원이 달린 두 건의 프로젝트. 심지어 그중 하나는 법적 분쟁이 예상되는 대외비로써 회장님, 전무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끼리 진행하게 되었다. 상대 회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상하는 실무자는 나뿐이었기에 전무님께서는 더 큰 대외비를 알려 주셨다. 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회사와 관련된 클라이언트들, 국내 하청 업체들, 에이전시 등과 직원들도 재정적으로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반드시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해결해야 했고, 그전에 알려지면 회사 안팎으로 난리가 날 거니 세부 사항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 진행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좋았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일이 잘 맞았기에 모든 프로젝트를 잘 진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남들보다 중요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내심 우쭐하기도 했다. 그래서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거의 매일 자정까지 일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도 클라이언트나 에이전트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이 잠자고 외출 준비하는 시간밖에 없는 것도 딱히 문제라 여기지 않았다. 정말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해 봄 그날을 맞기 전까지는.
요코하마로의 출장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늦은 오후,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업무를 보는데 사무실 공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사무실 내 일부 인원이 조용히 술렁거리고 있었고, 공기가 평소보다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일하다 말고 대놓고 물어보긴 그러니 귀만 쫑긋 세우고 있는데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얼른 세상에서 입이 가장 가벼운 선배가 내 자리까지 와 소문을 전해주길 기다렸고 마침내 그가 왔다. 그리고 나에게 알렸다. 조금 전 회사 공장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그때부터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삶'과 '나의 일'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