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도 '남 탓'도 아닌 경우
시간과 발품이 필요한 때
가끔 자책을 하는 경우를 만난다. 제가 부족해서요, 더 노력해야 했는데, ... 운동선수가 아쉬운 패배 이후 인터뷰일 수도, 낙방 소식을 접한 취준생의 말일 수도 있다. 보통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인성'갑'이다. 은근히 감독의 전술이나 동료의 실수에서 패배의 원인을 지적할 수도 있을 거다. 많은 걸 포기하고 시험에 몰두한 자신을 더 갈아 넣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이들은 노력이 아닌 '노오력'을 말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내 탓이 슬프다. 남 탓을 안 하는 그들이 멋지지만 안쓰럽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입시 결과와 불평등을 분석하면서 부모의 학력과 재산을 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IMF 이후 학력과 재산의 대물림은 슬픈 현실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 경우 부모와 환경의 영향에 따라 습관과 태도가 형성되기에 청소년기에 그들의 성공이든 실패이든 남에게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손흥민 아버지께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닥쳐지는 많은 것들은 대체로 나에게서 기인한다. 중년의 무게와 노년의 회한이 여기에서 오지 않나 싶다. 심지어 링컨은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여전히 남 탓을 하는 어른이 있다. 당신만 아니었으면 한몫 잡는 건데. 그놈만 아니었으면 탄탄대로였는데. 그때 그 사람만 도와주었다면. ... 나도 이들 중 하나이다. 근데 내가 안다. 그것을 방조한 내 게으름이 싫고, 그 사람 만나서 속은 내가 바보고, 나와 비슷한 처지를 극복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런데 내 탓도 남 탓도 아닌 경우가 있다. 그저 조화(Fit)의 문제이다. 흔히 채용과정에서 발생한다. 서류와 면접에서 앞만 보고 달리거 한 후 줄을 세우는가? 물론 정성/정량 평가에 따라 점수를 메기지만 그때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적응하며 만족하고 능력을 발휘할지가 핵심이다. 사실 지원자는 그걸 미리 알기가 어렵다. 공개된 정보와 들리는 소리로 추측할 뿐.
오랜 전 어떤 조직의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와중에 뛰어난 지원자를 만났다. 흔히 말하는 스펙이 엄청났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그 자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능력이 우수하기에 입사 후 변신을 시도한다면 곧 따라잡으리라. 그렇지만 그분이 걸어온 길을 볼 때 그 변신을 자청할 것 같지 않았다. 솔직히 궁금했다. 이 자리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아마 자신과 더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가셨을 것이다.
유학 시절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시는 금융위기로 수많은 해고가 이어지는 살벌한 시대. 미국 애들은 회사에서 잘리면 이곳과 나랑 Fit가 안 맞는다며 짐 싸고 유유히 나간다는 것이다. 그땐 미국식 허세라고 생각했다. '무슨 Fit 타령이야, 능력 없고 요령 피우니 밀려 난거지' 하지만 점점 그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한다. 옷을 살 때 내게 어울리는 색상과 사이즈를 찾는다. 난 빨간 바지를 입고 싶어도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이제 미디엄 T셔츠를 입으면 자꾸 배가 불룩해 보인다. 그 옷이 불량도 아니고, 내가 모자란 것도 아니다. 그냥 Fit가 안 맞는다.
지금도 노오력을 기울이는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그들에게 누구의 탓이 아닌 경우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그저 시간과 발품이 필요한 때도 있는 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