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쓸모, 소환의 용도
무엇과 더불어 살 것인가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창가냐 복도냐. 마치 짜장과 짬뽕과 같다. 나이가 드니까 복도자리가 편해진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 더욱 그러하다.
자리를 잡고 보니 옆에 아빠와 아이가 앉았다. 뒷 쪽엔 다른 식구들이 앉았다. 갓 돌을 넘긴 듯한 아이를 다루는 아빠가 바쁘다. 내 자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아이를 단속하는 손길이 계속된다. 아이 아빠에게 말을 했다. 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아빠의 수고는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십 년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태평양을 건넌 비행이 떠오른다. 두 아이 먹고 볼 것을 가지가지 준비하고 비행 준비를 마쳤지만 공항 가는 길부터 녹초였다. 그 많은 더블백, 유모차, 카시트를 어떻게 옮길 수 있었는지. 그 와중에 따스한 눈빛과 말들이 기억난다. 걱정이 태산인 나에게 짐을 척척 받아주면 환한 웃음과 인사를 건네준 직원, 처음 본 우리 아이들이 이쁘다며 인사를 건네는 나이 지긋한 승객들, ... 그네들의 짧은 응원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 가족의 긴 여행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기억은 공감을 위함이 아닐까? 물론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을 압도하기 일쑤다. 무례한 행인의 말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학창 시절 억울한 기억이 어른이 된 나를 불끈 화나게 만든다. 기억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끔은 주저앉은 나를 본다. 오래 전 50이 넘은 중년 남성이 택시를 타서 기사를 폭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승객은 택시에서 수십 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군대 고참을 만났던 것이다. 나쁜 기억의 힘이리라...
학위를 따고 처음으로 강의를 준비하던 때였다. 어떻게 수업을 구성할지, 어떤 규칙을 수업에 적용할지, 성적 평가/공개/문의를 어떤 방식으로 실시할지 등을 두고 고민이 쏟아졌다. 박사과정 중 강의와 수업에 대해 배운 적은 없었기에 준비가 덜 된 교육자였다. 그러한 내게 대학 시절 무례한 선생들과 무익한 수업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르게 해야겠다. 나느 그러지 말아야지. 이런 다짐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마음을 바꿨다. 인상 깊은 선생들과 따라할 만한 수업방식들을 소환하고자 노력했다. 유학시절 TA로 참관했던 수업들까지 포함해서. 서너 줄 질문 이메일에 열 줄 이상으로 답을 하고 수업 중 교탁 위까지 올라섰던 E교수, 학생들의 페이퍼에 일일히 코멘트를 달며 자기 연구실과 스타벅스에서 면담시간을 가졌던 R교수, 왜 B를 주었냐는 항의성 이메일에 한 학기 동안 수고했다면 격려해준 L교수, ... 그들을 생각하며 내 수업의 내용과 규칙, 내 마음과 태도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하니 길이 보였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길거리에서 크게 당황한 때 였다. 차에 블랙박스가 없던 터라 경찰과 이야기하며 불안해 하던 순간이었다. 처음 본 청년이 다가왔다. 왜 그러지? 그 청년은 '자신이 모든 걸 다 보았다고. 혹 증언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며 번호를 남기고 떠났다. 나의 좋은 기억들 중 하나이다. 내가 이 기억을 소환하는 한 나는 이 기억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망각은 쉽지 않다. 다만 어떤 기억 속에 머물지는 우리의 몫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