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장점 중 하나는 과거 이해 안 되던 것이 가끔 풀리는 경험을 마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 듦의 단점은 수도 없이 많다.) 나에게 그런 것이 바로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헨리 나우엔의 책제목으로 접한 이 말은 이해불가였다. 상처를 그럴듯학 포장하는 말 아닌가 싶기도 하고, 모든 게 다 뜻이 있다는 대책 없는 위로 같기도 하고. 20대의 나는 그렇게 그 말을 넘겨버렸다.
그렇다면 내게 상처는 있었을까? 유학 지원의 실패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석사 과정을 끝낼 무렵 열개나 넘는 학교에 지원하고 봄을 기다렸다. 수개월이 지나자 이메일이 띄엄띄엄 날아왔다. "Thank you for ..."로 시작하는 메일은 불합격을 의미했다. 지원해 주어 고맙지만 수많은 지원자들로 힘든 결정을 했다는 내용. 그다음부터 "Thank you"라는 이메일이 줄을 이었다. 그래 하나만 붙으면 되는 거야. 어차피 한 곳으로 유학을 가고마면 끝이니까.
근데 '그 하나'는 오지 않았다. 떠날 준비는 다 했는데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도망갈까? 하지만 석사논문은 끝내야 했다. 사람을 피한채 노트북을 마주했다. 그렇게 그 해의 봄은 지나갔다. 잔인한 봄이었고 사람들은 내게 거리를 두었다. 그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누군가가 주변 인사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을 테고 사람들은 배려를 해주었던 것이리라. 마음은 쓰렸고 말수는 줄었다.
1년 후 재도전 끝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진감래 혹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내가 희망하던 몇 군데 학교에서는 끝내 나를 거부했다. 선택지는 단촐했다. 따라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혹은 '고생한 보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1년을 날렸다는 허무뿐. 나의 노력이나 전략이 부족한 탓이라고 교훈을 애써 찾아보았지만 무의미했다. 납득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10여 년이 흘러 고국에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학생들 취업이 태산이다. 아니 인턴 자리도 쉽지 않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교수로서 무능함을 느낀다. 어느 날 연구실에 A가 똑똑하고 들어온다. 인턴 결과를 기다리던 친구다. 근데 얼굴을 보니... 한 10분 이런저런 위로를 건넸다. 근데 말을 할수록 꼬인다. 에이... 밥을 먹자고 했다. 그때 '잔인한 봄' 이야기를 풀었다. 마지막 불합격 이메일을 받을 때 당혹감은 여전히 지금도 생생하다. 내 흑역사가 A에게 비타500이 된 듯했다. 멋진 얼굴에 그늘이 살짝 사라졌다.
내 성공담은 쓸데가 없다. (별로 내세울 이야기도 없지만.) 내 실패담은 용도가 많다. 무엇보다 남을 이해하는 원동력이다. 난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다. 순응적으로 보이지만 생존과 인정을 위해서다. 이런 나에게 공감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볼 때만 가능하다. 내게 그 잔인한 봄이 없었다면 A에게 더 노력하라고 담을 기약하자고 했을 것이다. 왜? 난 성공했으니까. 근데 아무리 100을 쏟아부어도 0이 나올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봄이 내게 가르쳤던 바이다.
내 인생의 흑역사가 언제냐고? 그 잔인한 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봄이 나에게 '공감'을 누구에게 '위로'를 선사했다면 흑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 봄날의 기억과 감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