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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인생, 열매 인생: (2) 논문

'자판기'가 아니라 '나무'

by sung Aug 10. 2023

Publication talks. Publish or perish. 대학원 입학 후 귀 아프게 들은 말이다. 학계에 자리를 잡으려면 논문 출판이 필수이고 그렇지 않으면 업계에서 퇴출이라는 소리. 일단 자리를 잡아도 승진을  위해 논문 출판은 그야말로 MUST이다. 그것도 좋은 걸로 많이.



작년 11월 논문을 하나 출판하였다. 약 10년 전 다른 논문을 출판한 학술지였지만 이후 두 차례 좌절을 안겨다 주었기에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산인가라고 생각했다. 학술지 편집장이 좋게 보더라도 익명의 외부 심사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하다.


몇몇 지인들이 온라인상에서 출판된 논문보고 축하를 해주었다. 진심 어린 말과 글귀에 고마울 따름이다. 왜 내게는 그런 따스한 면들이 없는가 잠시 반성한다. 근데 그들의 축하에 그리 맘이 들뜨지 않는다. 왜 이러지? 농구 코트에서 어쩌다 골을 넣은 후 후배의 엄지척에 으쓱할 때 그 기분이 아니다.


왠지 축하는 2023년을 사는 ''가 아니라 한 2-3년 전의 ''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2022년 11월의 열매를 위해 2019년과 2020년을 애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니 이 학술지(D)에 투고하기 전에 이미 세 곳의 학술지(A, B, C)를 두들겼다. 잠시 그것을 정리하자면,


2020년 3월    모 학회 발표

2020년 4월    A학술지 투고 후 퇴짜

2020년 5월    모 연구모임 발표

2020년 8월    B학술지 투고 후 퇴짜

2020년 12월  A학술지 재투고 후 퇴짜

2021년 1월   C학술지 투고 후 퇴짜

2021년 8월   D학술지 투고 후

2021년 10월 D학술지 1차 수정본 제출

2022년 4월   D학술지 2차 수정본 제출

2022년 6월   D학술지 3차 수정본 제출

2022년 8월   D학술지 게재 승인

2022년 11월 D학술지 온라인 출판


2019년 하반기 연구하고 정리한 내용을 2020년 상반기 두 곳에서 발표하고 A, B, C 학술지에서 3연속 '빠꾸'를 맞았다. 특히 2020년 첫 '빠꾸' 이후 큰 변화를 주고 다시 쓰는 작업이 힘겨웠다. 2021년부터는 D학술지와의 지루한 참호전이었 다. 3번의 라운드를 거치며 편집장과 심사자들의 포탄을 막아내기가 힘들었지만 프로젝트의 끝이 서서히 보였다. 만약 내가 2020년 4월 첫 타깃으로 삼은 학술지가 덜컷 내 논문을 받아주었다면 기뻐 펄쩍 뛰었을리라 그러나 2022년의 출판된 논문은 내가 2-3년 전에 심어놓은 씨앗의 결과였다. 그래서 담담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니 지금의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과거의 내가 애쓴 열매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이름 없이, 명함 없이, 지위 없이 도서관 이곳저곳을 옮긴 메뚜기 시절이 생각났다. 납득하기 어려운 몇몇 평가자들의 비수 같은 말로 솟아난 짜증을 혼자 삭이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았던 순간들이 존재했다. 2023년의 나는 수년 전의 나에게 빚을 지고 다. 지금 내가 듣는 찬사와 칭찬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내가 안겨다 준 셈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뿌리는 씨앗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안 하는지) 주변은 모르지만, 그들도 수년 후에는 알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성실히 살고자 한다. 과거의 내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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