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가장 괴로운 시간, 바로 세미나였다. 자연스레 특정 주제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는 게 커다란 부담이었다. 첫째는 영어실력. 리스닝과 스피킹 둘 다 문제. 다음은 문화차이. 언제 듣고 언제 낄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한국 기준으로 그네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서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근본적 문제를 발견했다. 내 안에 세미나와 토론에 참여하는 태도였다. 누가 잘하나? 그날의 베스트와 워스트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세미나 수업 때도 누가 읽어왔는지, 누가 그냥 참여하나 살펴보았다. 내 순위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안타를 친 날과 삼진을 당한 날을 구분한다.
그러다 내 공부의문제에 직면했다. 지난 시간 공부한 걸 정리하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내 안에 남은 건 나 스스로 신기하고 고민했던 이슈들이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읽었던 논문의 내용은 증발했고, 숙제로 읽은 책들은 제목마저 가물가물했다. 그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를 통해 난 무엇을 얻었는가? 순간의 안도감이나 자신감 아닐까. 지금을 사는 나조차 가물가물한 그것들.
차차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발표와 토론이 자랑이 아닌 나눔의 장이라 생각했다. 나 이만큼이라 말하는 뽐내기는 그만하자고. 지적 씨름을 펼쳤던 건 아닐까? 온몸의 힘을 동원해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게임. 문제는 그 게임이 나를 성장시키지도 행복하게도 만들지 않는다. 그저 그 게임을 반복해서 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잠시의 희열을 주지만 그보다 몇 배나 긴 불안이나 불만을 선사한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러 모인 거 아닐까? 포틀럭(potluck) 방식이다. 준희는 잡채, 서준이는 치킨, 서진이는 식혜, 은수는 밥, 기철이는 미역국을 가져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 다섯 사람 중 일등이 있을까? 음식의 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는가? 각자 자기의 음식을 나누고 상대에게 고마워하면 된다. 만약 굳이 그 속에서 여전히 경쟁하려는 자가 있는가? 아직 나눔의 참 맛을 모르는 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