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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부끄럽지?

"미안하다"라고 말한 날

by sung Aug 24. 2023

어렸을 때는 부끄러울 때가 심심찮게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꾸중을 들을 때, 하루 종일 단추를 잘못 채운채 돌아다닌 날, 동네 빙판 길에 크게 넘어진 나를 모두가 쳐다봤을 때, ... 이러한 감정이 나이가 들자 드물게 올라왔다. 주변 사람들이 점잖아진 것인지, 내가 덜 실수하며 존재감없이 살아서인지. 어른이 된 후 다들 적당한 가면을 쓴 채 각자의 선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그러리라 짐작해 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하지만 종종 어른인 내가 부끄러워 하는 경우를 만난다. 4차선 오르막  중간에서 나의 고물차가 퍼져 버렸을 때, 엄청난 성취를 일군 동창들 소식을 들을 때,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애들 앞에서 뜯을 때,  오랜 친구가 나의 흑역사를 여과 없이 가족 앞에서 갑자기 술술 진술할 때, ... 크고 작은 부끄러움이 여전히 존재한다.


수년 전 어느 날이었다. 복학생 시절 내  만행이 생각났다. 문득 떠오른 기억 속 나는 친구 H의 과제에 무임승차를 했다. 성적을 올리고자 자율 과제를 선택한 친구에게 '어... 내 이름도 거기 올려줘'라고 말했다. 근데 그 친구가 진짜 내 이름과 자기 이름과제 표지에 병기했다. 그 덕인지 난 그 수업에서 A를 받았다. 약 10년 사건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성적이 뭐라고 그런 말을  내던졌을까...


또 시간이 흘러 그 이야기를 H에게 꺼냈다. 그리고 미안하다 말했다. H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함께 그 수업을 들은 것만 기억할 뿐. 아무튼 복학 후 열심을 내고 있던 H가 느꼈을 부담감과 당혹감을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시간이 흘러 뭔가 바로잡은 느낌은 이후 맘을 가볍게 다. 실수와 잘못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기억으로 과거로 돌아가 늦게나마 사과할 수 있다는게 다행이다.


요즘 나는 무엇을 부끄러워했나? 밑창이 나갈 정도로 허름한 구두? 동일 업종의 이들보다 뒤처지는 스펙?헉헉거리며 한 골도 못 넣은 농구 시합? 진짜 부끄러워할 만 것들이었나 생각해 본다. 내 약점이 드러날 때 부끄러워하는지 모른다. 근데 약점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아들과 대화를 통해 내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날 저녁 어쩌다 수년 전 서로에게 아픈 사건을  꺼내 보았다. 내가 아들을 크게 혼낸 날로 수년 동안 묻고 지냈다. 내가 그때 화난 건 맞지만 그날도 아들에게 잘못한 점을 묻고 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아들의 답은 달랐다. "아빠가 너무 화난 거 같아 거기에 맞게 말을 한 거야." 그 순간 머리가 띵~ 그날 밤 아들에게 사과했다. 잘못된 방법으로 혼냈다고.


어린 시절 좋은 기억 중 하나가 있다. 엄마가 내게 사과한 일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시켰다. 얼마나 쓰기 싫었는지 엄마에게 불만 하나를 적었다. 요즘 전화 오면 "엄마 없다고 해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 거짓말  하는 것 같다고. 그 편지를 받으신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미안하다며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 하셨고 약속을 지키셨다.


난 무얼 부끄러워하고 무얼 사과하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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