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은 이렇게 왔다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영원히 다닐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닌
권고사직으로 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부터 시작된 경영악화, 마이너스 사업 운영, 언제 풀릴지 모르는 경제 상황까지
그렇게 태연하던 대표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예감을 했어야 했는데
모른 척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짤림.
회사의 인원 반이 감축되면서 최정예 부대에 속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도 잠시
아무 죄의식 없이 거만하게 퇴사를 얘기하는 관리자의 뻔뻔함에 화나는 것도 잠시
내 마음을 잠식했던 가장 큰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일평생 월급의 노예로 살면서 매달 받는 그 얼마 안 되는 돈의 맛은 꽤나 달다.
밤새 가며 일하고 내 인생을 쏟아부어서 받는 돈,
대충 시간 때우고 칼퇴 하면서도 받는 돈.
카드값 나가는 날이면 대부분이 사라져 다시 카드로 연명하는 그 삶.
그 나태하고 평안하고 징그러운 내 삶.
그런데 그 삶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나는 월급의 노예답게 바로 다음 직장을 알아봤다.
어렸을 때 드럽게 많이 했던 아르바이트도 알아봤다.
매달 나가는 돈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돈이 있어도 불안했다.
그리고 오늘 면접 연락을 받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됐다.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서두르지 말자.
불안해하지 말자.
지금 겪는 이 일은 불행이 아닌 기회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전 숨 고르는 시간이다.
너무나 많은 의미 부여는 오히려 발목을 붙잡겠지만
그래도 지금을 1막과 2막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1막은 이렇게 끝이 났다.
힘들었다.
이 사회를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고, 그로 인해 많이 다쳤다.
다친 만큼 성숙해져야 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1막의 키워드는 내가 바라보는 사회였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항상 바깥이었다.
궁금했고 짜릿했으며 자극적이었다.
그것에 중독된 나는 더 알고 싶어 더 쫒아갔고 더 망가졌다.
후회하지 않는다. 즐겼기 때문에.
하지만 착각했다.
그럴수록 나를 채워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는 나에게 소외됐다.
2막의 키워드는 '나'로 정했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겠다.
나를 사랑하겠다.
나를 아껴주겠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버려져있던 나를 다시 찾을 시간이다.
왜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않는지,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지
탓하고 원망했던 적이 많았다.
원망의 상대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것.
이 간단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면서도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음껏 사랑해주자.
나의 가치는 나만이 만들 수 있다.
드럽게 민망하지만 이제부터 적응해야지.
나를 사랑하는 것.
강제로 얻은 이 휴식시간에 난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의 2막은 이렇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