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은 이렇게 왔다.
영월 한달살이 5일째, 드디어 이곳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한달살이 프로젝트에 응모한 뒤
강원도 영월에서 한달살이가 시작되었다.
당장 어제까지 마감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
그동안은 영월씩이나 와서는 매일 이곳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며 이 작은, 하지만 광활한 영월 산골마을을 조금씩 느꼈다.
더군다나 난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뚜벅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하루에 버스가 5번만 운영하는 이곳에서 왕복 두 시간 거리를 걸어 다녔다.
인도도 없어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를
게다가 산속 마을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높은 언덕길을 열심히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로가 됐던 건
가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노랗게 익어가는 벼,
6시만 되면 선선해져서 기분까지 선선해지는 날씨,
읍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곳에 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잔,
어딜 봐도 보이는 초록색 산과 파란색 강이었다.
어제 마감을 끝내고 드디어 가벼운 마음이 된 오늘,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설치 미술 전시관인 젊은 달 와이파크에 가서 전시회를 보고
또 하염없이 걸어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비로소 여기 오길 잘했다고 느꼈다.
카페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으며, 바로 앞 창가에 보이는 강이 예뻤고
읽는 책이 재밌었으며, 들려오는 재즈가 듣기 좋았다.
그래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 행복을 온전히 나만 느끼는 것이 너무나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에 내가 이 날을 돌아보며 너무나도 그리워할 오늘일 수 있기에
아쉬움보다 순간의 즐거움을 더 느껴야겠다.
아직 이곳에서 3주의 시간이 더 남았다.
오늘처럼 소소히, 하지만 값지게 하루가 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