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은 이렇게 왔다.
2박 3일간 강원도 고성에 다녀왔다.
태풍 카눈이 지나가자마자 가서인지 쨍한 여름의 강원도를 볼 순 없었다.
날씨의 영향 탓이었을까
푸른 자연 속에 파묻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나는
이번 여행에선 별 감흥을 못 느꼈다.
그러고 보니 신기했다.
나에게 강원도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다녔던 곳이자
친구들과 종종 휴가차 갔던 곳이며
나 혼자서도 힐링하러 가는 친근한 공간이자 나의 마음속 고향이다.
그래서 한동안 서울에서 찌든 마음으로 살아가다 찾는 그곳은
늘 나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엔 크게 유쾌하지도 감동받지도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최근에 나는 서울에서 정말 아무 일 없이 산다.
매일같이 늦게 일어나 잠시 인터넷을 하다 책을 읽다 글을 쓰는 척하다
헬스장을 가서 한 시간 운동을 한 다음 집에 돌아와 다시 책을 읽고
영상을 보다 자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너무나 평안하고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기쁘거나 노여움 없이 그렇게 감정 없이 살아간다.
그런 일상 속에서 떠나는 여행은 정말이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 나에게 여행은 늘 일탈과 해방이었다.
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속에 파묻힌 곳,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보기 싫은 거리,
감정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애를 쓰다 오히려 더 감정을 토해내는 곳,
소음과 비명이 섞인 곳, 그래서 늘 나를 긴장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곳,
그런 서울을 떠나는 어디론가의 여행은 나에게 늘 일탈이자 해방이 되었다.
서울의 회색거리에서 푸른 무언가가 점차 내 눈에 펼쳐질 때 설레는 마음에 쿵쾅거리고
낯선 곳의 길거리가 힘이 되고, 바람만 스쳐도 마음이 울렁거리고
햇볕의 소리가 운율이 되어버리는 여행.
그 순간순간의 감정으로 미치도록 눈물 나게 행복함을 느끼는 것.
나에게 여행은 그러했는데
여행하는 즐거움을 잃은 듯하다.
생각지 못한 마이너스다.
심지어 강원도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며 문득 생각했다.
이곳이 외로워 보인다고.
말도 안 돼...
늘 이런 곳으로 와서 살 생각만 하며 살았는데.
이곳이 외로워 보인다니...
어떻게 하면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내가
갑자기 이곳에 평생 살면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요 며칠 별일 없이 산 대가로 서울이 더 이상 지옥 같지도, 지방이 천국 같지도 않게 된 것이다.
바다에 수영하러 간 친구들을 뒤로하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숙소에서 책을 읽는데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이럴 바엔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책 읽는 게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수가 주는 여행의 의미는 이런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