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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예지 Oct 12. 2022

혼술인

할머니는 마실 물을 온 병에다가 다 담아 두셨었다. 지금도 그러하니 “두신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주스병, 소주 페트병, 주전자 등등 하여간 액체를 담을 수 있을 만한 용기에는 다 물을 담아두셨다.


아주 어렸었던 과거의 언젠가 할머니 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렸을 적 뇌전증을 앓았던 나는 삼시세끼 식후 땡으로 알약을 삼켰어야 했는데, 엄마는 약봉지를 뜯고 있는 내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을 내밀었다. 알약을 하도 먹었던 나는 물을 한 번만 꼴딱거리면 약을 삼켜낼 수 있는 엄청난 어린이였다. 어김없이 물은 원샷으로 넘어갔고, 순간 혀의 모든 부위에 쓴맛이 느껴지더니 곧바로 목구멍이 따가워졌다. 얼굴의 전부를 한껏 구겨대며 엄마에게 찡찡거렸지만,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웃어넘기길래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것이 술이란 녀석과 나의 첫 번째 조우였다. 깡 소주 원샷을 체험한, 하여간 엄청난 어린이였던 것이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때 선생님 몰래 술을 챙겨 가서 마신다거나, 호기심에 술을 입에 대보았던 심장 철렁 흥미진진 학창 시절이 내게는 없었다. 난 철저하게 맛있는 액체류만 탐했던 건전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믹스커피도 마시면 안 되는 줄 알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꼭 술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내가 맛보고야 말 산해진미들이 차고 넘쳐났기에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술과 나의 역사는 이십 대가 시작될 무렵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전날 밤, 친구들과 밤을 함께 지새우자는 약속을 했다. 준비물 중에는 술이 있었다. 12시 종이 땡 하고 울리면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술을 구입할 수 있는 앳된 모습의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술맛을 알게 될 리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나마 덜 쓴 술을, 성인을 기념하기에 어여쁜 술을 찾아냈다. 파란색, 빨간색의 선명한 색을 지닌 데다, 맥주인지 와인인지 알 수 없는 그 술을 아실지 모르겠다.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그때는 나의 선택에 무척이나 만족하며 술 같지도 않은 그 술로 축배를 들었다.


대학생이 되자 바야흐로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모를 삶이 시작되었다.

속 깊은 곳에서 술내가 올라올 정도로 마셔 본 적이 있는가? 술을 술로 해장한 적은? 여전히 술은 맛이 없었지만, 그 분위기가 즐거웠고 취하는 일이 재밌었다. 술을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바람에 나의 주량은 점점 늘어갔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나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나의 친구들은 재밌거나 재미없기는 해도 하나 같이 다정했다.


술이 내 인생에 들어오고부터 함께 등장한 것은 바로 흑역사였다. 나의 술버릇은 참으로 다양했고 난장판이었다. 20대 초반의 내 술버릇 중 하나는 애석하게도 전화 발신이었다. 술버릇으로 전화라니. 어떠한 비극이 펼쳐졌을지 눈에 훤하지 않은가? 내 친한 친구들은 그 시절 술 취한 나의 전화를 한 번쯤은 받아봤었고, 기를 쓰고 알아서 받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던 엑스 보이프렌드 또한 나의 테러를 막을 순 없었다. 기억에도 없는 통화 기록을 보았을 때의 절망감과 아찔함이란 어릴 적 물에 빠졌던 기억보다도 끔찍했다.


 ‘절대!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겠다. 앞으로 술을 마신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허나 나는 자주 인간이 아니었다. 울고 뛰고 춤추고 노래하고 아주 가관의 삶이었다. 뭐든 잘하고 싶었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잘 놀고도 싶었던 게 문제였다.



술과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결과, 나와 가장 잘 맞는 술은 맥주였다. 소주나 위스키는 그 맛을 상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맥주는 늘 나의 도전 정신과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맥주에 대해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집을 떠나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의 밤은 항상 맥주가 함께 했다. 본격적으로 술이 좋아진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주 여행자의 신분이었던 그때 말이다. 흑역사는 이만하면 족했고, 술로 다음날을 버리는 일도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는 할 수 없었으니, 혼술인이 된 건 무척이나 당연지사적인 일이었다. 

보통, 나의 루틴은 이러하다.


1.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 맥주를 냉동실에 넣어 둔다.

2.     샤워를 마치고, 얼굴과 몸에 바를 것들을 다 바른다.

3.     일기장을 펼치거나, 책을 꺼내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세팅한다.

4.     살얼음이 생겼을 시원한 맥주를 꺼내온다.

5.     캔을 딴다.

6.     벌컥벌컥 마신다.

7.     딸꾹질한다.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면 나는 꼭 딸꾹질이 나왔다. 아무튼 이 루틴은 여름밤에 특히나 만족도가 최상이었는데, 맥주의 맛 중 8할은 시원함이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이 계절이 제격이었다. 실은, 좀 쌀쌀한 계절인 지금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여름이 제격 이랬지, 다른 계절에 마시는 맥주가 별로라고 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흑역사가 만연했던 때를 떠올리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후회가 밀려온다. 그건 내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사람이면서도 자기 검열을 자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술을 멀리하지 않고 있으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걸 까. 온갖 긍정을 쥐어짜 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면, 그 시간 덕에 나에게는 분위기에 덜 휩쓸릴 (아주) 조금의 자제력과 술을 즐길 줄 아는 노련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왕 정신 못 차린 김에 돈독한 우정을 다짐해 보기로 한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내주길, 곱씹기 때문에 불행한 감정들을 전염시키지 않고 홀연히 털어낼 수 있게 하길, 달아오른 즐거움에 윤활유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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