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pe PM Jan 03. 2023

두 번째 발자국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

희망 직군을 정하기까지의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 기간이 지나버려 반 강제적으로 휴학을 해야 했다.

돈 없고 굶주린 자취생이 어떤 일이든 못하랴.

노원 TOPTEN 의류 매장에서 정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물론, 그 전에도 과외나 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긴 했지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한마디로 '편하게 돈 버는' 방법이 아닌 

발로 뛰며 '노동'을 한 첫 경험이지 않나 싶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근무시간과 의류에서 나오는 먼지를 하루종일 마시다 보면

집에 와서 다리 주무르랴 콧속에 쌓인 까만 먼지 빼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몰랐다.


복학 후에도 아르바이트에서 인턴, 사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위치에서 근무하며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기왕 학교를 다니며 일하는 김에 나중에 떠올렸을 때 기억에 오래 남고,

남들이 접하기 힘든 직군을 경험하며 세상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가지를 잠깐 소개하자면 서울 이랜드 FC 축구팀의 경호를 1년남짓 하기도 하였고, 

당시 인기프로그램이었던 SBS의 K-POP Star무대연출을 하기도 하였으며(이때 악동뮤지션이 등장하였다)

IoT개발 인턴으로 입사한 스타트업에서는 마케팅에도 욕심을 내어 도전하여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247%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나름의 성과도 내었다.   

졸업반일 때는 한 건설회사의 현장 관리직으로 새벽 6시까지 매일 출근하여 총무직을 수행하고

이후에는 직접 크레인이나 건설 자재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직종들은 PM과의 어떠한 일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단지 나는 돈이 필요했으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였고, 맡은 업무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다만 내가 얻은 것은 그 과정에서 세상을 배웠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정을 위해 매일같이 새벽 6시부터 중노동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땀방울이 얼마나 대단한지, 

또 한 기업의 CEO가 기업의 가치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고뇌하는지,

K리그 3부 리그의 선수들이 몇 안 되는 한 줌의 팬들에게 자랑스럽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이며 열심인지를.


이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을 고작 몇 줄 글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사회 각 층에서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며 얻은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며,

사회에는 보이는 일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의 남모르는 노력이 있기에 비로소 빛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또,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말을 피부로 이해하며 발돋움하는 계기로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PM의 진로는 어떻게 결정했는가?

사실상 이번 글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부분이다.

'과연 내가 개발자로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학교 생활 내내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컴퓨터 공학(소프트웨어 전공)을 공부한 대부분의 동기들이 개발자로 취직하고, 

심지어는 개발자가 비전이 좋다는 이유로 문과에서 복수전공을 하기도 하며 

또는 외부 부트캠프와 각종 취성패로 개발인력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점의 중심부에서 정작 나는,

코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여전히 고뇌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나는 4학년 졸업반이 되었고, 졸업작품을 앞두고 있었다.

동기들과 팀을 이루어 진행한 캡스톤프로젝트는 졸업작품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인지

여타 팀프로젝트와는 그 난이도나 작업량이 비교하기 어려웠다.


처음 주제 선정에 있어서부터 우리는 난항을 겪었다.

라즈베리파이의 sonar sensor를 이용한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구, 증권시장의 변동폭을 감지하여 이용자에게

투자 가치를 알려주는 어플 등 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른 여러 주제가 쏟아졌다.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골머리 앓고 있을 때, 비록 그때는 인지하지 못하였지만 첫 PM업무를 도맡아 했다.

구현할 수 있는 기간과 기술력의 한계를 정하고, 지원받은 예산에서 가능한 주제로 좁히며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의견을 조율함에 따라 우리는 비로소 캡스톤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VR카메라를 통해 실제 장소를 촬영하여 그 배경 위에 전시물을 설명과 함께

VR/AR 화면전환이 가능한, 원격 관광 어플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작업은 순탄치 못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만큼, 작업의 분배와

목표 기일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프로젝트 관련 제출 서류가 많아 바쁜 팀장을 대신해, 

누군가는 팀원들을 이끌어 결과물을 만들어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PM의 업무에 속해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완성된 프로젝트에 신이 나서, 발표회 날 타과 학생들을 초대해 체험과 투표를 독려한 것도,

그리고 그 투표 결과로 인해 종합 4위의 성적을 얻은 것도, 이후 자체 피드백을 진행하여 제출한 것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20대가 저물고, 아직은 젊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느끼며 나를 되돌아보았다.

하드코딩은 여전히 내게는 매력적이지 못하고, 개발자가 아니지만 전공을 살리며 취직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교 시절을 다시금 상기시켜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 가장 우선적으로 캡스톤 프로젝트의 기억이 떠오른다.

PM의 필요 역량과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은 미숙하기에 여기에 나의 앞으로의

노력과 자산을 계속해서 써 내려갈 요량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진로를 정해 한 걸음씩 내닫는 중이다.

늦었지만 꾸준히, 멈추지 않고 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