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어!
첫눈이 오던 날, 학원엘 땡땡이치고 막내는 ‘학원 가기 싫어!’란 돌림노래를 내게 반납했다.
“그 돌림노래 값이야! 다음엔 아파서 못 가는 것 외에는 학원 땡땡이 없어!”
“알았어, 알았다고!”
이렇게 막내와 협상한 지 9일 만에, 이번엔 ‘학교 가기 싫어!’란 돌림노래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제는 예방접종 하러 가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막내가 갑자기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소아청소년과여서 오전에 가야 하는데 막내는 귀찮고, 춥고, 가기 싫고 등등. 줄줄이 사탕처럼 핑곗거리가 늘어났다.
“안 돼! 예방접종은 12월까지야!”
“그럼, 크리스마스 지나고 가면 되잖아!”
“벌써 3번째 취소했어, 네 말을 어떻게 믿어? 그리고 그때 감기 걸려서 못 가면, 무료 예방접종 못 받는다고. 2차 예방접종 날아가는 거야. 지금 가자, 엄마 12시 반까지 시간 준다!”
“아무튼 오늘은 안 간다면 안가!”
막내는 약속을 무시하고 혼자 내린 결정으로 고집 피웠다. 나는 속이 타서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환장’의 불꽃이 몸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아들이 내 속에 불을 지폈는데, 오늘은 막내가 꺼져가는 불을 살리며 번개탄을 밀어 넣은 거다. 부지깽이로 쑤시는 것 같은 막내의 돌림노래를 참아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안 가!”
나는 산책을 하면서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갱년기가 따블의 사춘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야속함과 상한 자존심이 복받쳤다. 어르며 참았던 그동안의 노력이 불평과 미움으로 사라져 가슴이 뻥 뚫려 시렸다. 한순간에 희생도 사랑이라는 믿음이 물거품이 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 깊은 홍수에 빠져서 나는 허우적댔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들 점심을 차려줘야 한다는 마음을 붙잡고 가고 있었다. 아니, 들어가야 한다는 용기는 사랑의 불꽃이 아직 잿더미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 탓이다.
‘내게 이런 시험을 지겹도록 주십니까?’
부모의 자리가 무겁다 못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뚫린 가슴이 조금씩 채워지는 걸 느꼈다.
‘하나님의 자리는 얼마나 가혹할까? 천차만별의 사람을 다 품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아픔은 티끌만도 못한 거지.’
나는 잿더미 안에 초롱초롱하게 뜬 시원한 불씨를 후후 불어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시쯤 들어갔지만,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아 막내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막내는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고, 치우지도 않은 라면 찌꺼기는 상 위에서 보란 듯이 화를 돋우고 있었다. 흘린 찌꺼기도 예쁘게 보였던 마음이 불에 타버리다니... 막내는 노래를 흥얼대며 아까 일은 까맣게 잊고,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허리띠를 찾아달라며 오히려 성화였다. 나는 큰딸 점심을 차려주고 곧장 침대에 누워서 막내의 말을 흘려들었다. 막내는 여기저기 찾다가 허리띠를 찾고는 친구 약속이 있다며 쌩― 나가버렸다.
팽팽한 벽이 막내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저녁 7시쯤 들어온 막내는 침대에서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나는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불렀는데, 막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부르지 않고 막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하고 있는데, 한 시간이 흘러서야 나와 막내는 식은 밥을 먹었다.
그래도 밥 먹으러 나온 막내가 고마워서 나도 마음이 좀 풀렸고 막내와 티키타카를 하며 대화했다.
나는 재촉하며 막내에게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겠고, 막내에게 알아서 챙기라고 말했다. 내가 챙기지 않아서 주사를 못 맞게 돼도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막내는 알겠다고 하며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아직 미성년자라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때는 나와 같이 가야 하는데, 나는 막내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억지로 부추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좋고, 자기 말에 막내가 책임지는 걸 믿는 마음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 번 상기는 시켜줘야 할 것 같다. 그때 아파서 못 가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놨다.
이런 사건을 어제 겪었는데, 막내가 “학교 가기 싫어!”란 돌림노래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어제 맞은 폭탄이 폭죽이 되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었다.
“저번에 첫눈 온 날, 학원 땡땡이치는 대신 다시는 학원과 학교에 빠지는 일 없을 거라고 약속했잖아!”
“학원만 그랬지, 학교는 아냐!”
학원은 확실했고, 학교도 묻어가게 하려고 했는데 막내에게 안 통했다.
“나, 어제 밖에 많이 돌아다녀서, 추워 잠도 설쳤어. 다리도 아프다고!”
“그 정도로 학굘 안 가? 아파서 못 갈 정도가 돼야지!”
“오늘만!”
나는 어제처럼 검은 패딩을 입고 아침 8시 반에 밖을 나갔다. 막내를 더 설득할 여력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시집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비상계단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몸이 아파서 조퇴 맞고 싶어 하는데, 어머님 어떡할까요?”
선생님은 조퇴 가능 여부를 내게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막내가 피곤해서 그렇지 조퇴 맞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막내를 바꿔줬다.
“엄마, 나, 계단에서 다리 삐었어?”
“어쩌다가?”
“쉬는 시간에, 학교에 자주 오는 새끼 고양이 보러 뛰다가 접질렸어.”
“내가 계단에서는 뛰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했잖니!”
“엄마 앞으로 조심할게, 나, 조퇴 맞아야겠어. 점심은 먹고 갈게.”
“바로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
“파스 바르면 될 것 같아.”
발을 접질렸다고 하는데 학교 수업을 끝까지 받고 오라고 할 수는 없어서 조퇴를 허락했다. 하지만 막내가 오늘을 빌미로 가끔 학교에 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조건을 걸었다. 나는 학원 빠질 때 내걸었던 조건처럼 막내에게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엔 아파서 못 갈 정도 아니면 조퇴, 결석도 안된다! 오케이?”
“그리고 저녁 11시 이후에는 핸드폰과 아이패드도 엄마가 보관!”
막내가 10시에 학원에서 오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자유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았다.
“네.”
막내의 공손한 답장이 왔다. 증거물 확보다! 이제 학원에 이어 학교의 돌림노래도 끊어질 것이다. 막내가 주야장천 부르는 것은 자유라도 행동으로 쉽사리 옮기지는 못한다.
나는 막내의 메시지가 올 때까지 마음 졸였다. 답이 안 오고 조퇴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이다.
“네”라는 막내의 말 한마디가 진주보다 값지다!
이 말 들으려고 그동안 속이 탔나 보다. 탄 숯들이 이제 집안 공기를 정화해 주는 것 같다.
오늘 공기는 쭉―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