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 시를 읽고, 작가의 자화상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운명이란 존재에 손을 얹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작가의 사랑. 모성애를 저는 느꼈어요.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유월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胃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山川,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 내게 희망은 보이지 않다가, 병으로 숙주로 죽어가다가도 대지에 핀 홀씨, 흙에 몸을 묻고 언젠가 꽃으로 피어날 생명에 희망을 걸어보는 마음에 공감이 됐습니다. 씨 안에는 생명의 지도가 담겨 있을 테니까요.
제가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고 추천해드리고 싶은 시 4편은,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괜찮아>,
<서시>,
<유월>
입니다.
다른 시보다 이해가 빨랐던 제 기준입니다.^^
그리고, 시를 읽고 [해설]해주는 글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올립니다.
"....
타락한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한강의 화자들은 그 불화를, 즉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아픔을 주로 육체의 고통을 통해 드러내곤 한다. 상처받은 무구한 영혼의 존재가 피 흘리는 육체를 통해 체화되는 형국이다.
한강의 세계관은 육체를 영혼의 그릇으로 생각하는 고전 철학의 그것에 가깝다. 인간의 육체는 보잘것없는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그 허상으로 인해 오히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피흘리는 육체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다. 타락한 세계로부터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서 인간은 고통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강은 말하는 듯하다.
....
한강의 시는 삶을 관통하는 불꽃 같은 고통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실제적인 원인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나무의 잎사귀를 들여다보며,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과 마주하며 인간이 수시로 영혼의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을 왜일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달리, 그리고 한곳에 붙박여 있는 나무와 달리 인간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은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없는 언어를 가졌다. 언어와 더불어 인간은 영혼의 존재가 되었다. 한강의 시를 읽는 우리는 이제 언어와 영혼을 동의어로 취급해야 한다. 육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세계와 불화하는 무구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했듯, 한강의 시는 다른 한 편에서 일상의 언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침묵으로부터 최초의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순간을 복원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