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피에타
이 글 제목을 '로마(3)'으로 할지 '바티칸'으로 할지 고민했다. 바티칸은 로마에 둘러싸이긴 했지만 별개의 주(state)이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Vatican City State', 즉 '바티칸시 주'이다.
잠시 생각한 후에 글 제목을 '로마(3)'으로 하기로 했다. 아마도 내가 카톨릭이었다면 제목을 '바티칸'으로 했겠지만 무교인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는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티칸은 거대하고 유명한 관광지였다. 내가 갔던 날은 기다리는 줄이 짧은 편이라고, 운이 좋은 날이라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대기시간이 상당했다. 장벽같은 벽을 따라 줄을 섰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던 것 같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기다리는 분위기는 흔한 관광지의 그것이었다. 더운 날씨였기에 다들 어서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조금 짙어지나 싶었던 즈음에 내가 입장할 차례가 왔다. 입장 후에는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였다. 서로 지속적으로 몸이 맞닿을 정도로 빽빽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한 눈을 팔면 다른 사람과 부딪혀서 서로 미안함을 표시해야 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적지 않았다. 바티칸 내부는 압도적으로 황홀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그 광경을 구경하느라 한 눈을 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경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 보았던 것 중 몇 가지 장면들은 아직도 전혀 손상됨 없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바티칸은 거대하고, 황홀하고, 위압적이고, 사치스러웠으며, 예술적이었다. 벽과 천장은 프레스코로 가득했고 프레스코의 경계선은 금으로 장식되었다. 금장식이 얼마나 많은지 구경을 시작한 지 오 분쯤이 지나자 금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금이 그저 단순한 색깔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천장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아도 종교적인 공간이 아닌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그런 정도의 화려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려는 목적을 가졌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한 때 바티칸은 왕들의 왕 노릇을 하던 곳이었다. 여러 왕들에게 신의 이름을 빌어 명령을 내리던 절대권력자의 지위를 누리던 그 시절은 지나가버렸지만 공간만은 그대로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기독교(기독교는 카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에서 주요 복음서로 삼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는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바티칸의 모습만 봐서는 바티칸은 하느님의 나라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보였다. 아니면 본인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이미 들아가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러 종교에 대해, 신 관념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기에 이러한 공격적인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바티칸이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사들였든,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어떻게 고용했든지간에 바티칸이 소유한 작품들은 감탄스러웠다. 감탄스러운 예술품은 그 자체로 인간의 정신을 온통 빼앗아버린다.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비판적인 생각은 한 차례 감상이 끝난 후에야, 해석을 하려는 시도와 함께 이루어진다.
바티칸 내부 관광이 끝나고 외부로 나오자 거대한 성 베드로 성당이 시야를 막았다. 바티칸 내부가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으로 사람을 압도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은 건축 규모와 분위기로 사람을 압도했다. 성당을 구성하는 돌 하나하나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크기였다. 초국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만이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는 교황청이 면죄부를 판 돈으로 마련이 되었으며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 도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성전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온갖 악습과 착취가 행해지자 그는 상을 뒤엎고 '성전을 없애버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신의 이름을 빌어 믿는 사람들을 착취하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표명이다. 성 베드로 성당을 처음 봤을 때에는 그런 기록이 있었는지는 몰랐던 상태였지만, 이를 모르더라도 거대한 모순이 즉각적으로 느껴졌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공사였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곳에 성지순례하듯 오는 기독교인들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들이 믿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대척점에 있는 이 거대한 건축물에서 어떠한 종교적 경건함을 느끼며 무엇에 감복하는 것일까. 건축학적인 감상과 연구 목적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성 베드로 성당은 긍정적 의미의 종교적 건물은 아니었다. 보면 볼 수록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이런저런 무거운 생각을 하며 조금은 우울하기도 하던 때에, 이 모든 감정을 한 번에 치워버리고 그 공간을 감탄과 황홀함으로 순식간에 채워버리는 작품을 마주하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닌 듯 보였다. 그것은 조각상이 아닌 다른 존재였다. 그 첫 배낭 여행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예술품을 직접 목격한 충격으로 인해 나는 시간 관념을 잃어버렸다. 그 앞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머물러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는 사실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어떻게 인간이 조각한 조각상이란 말인가. 바티칸 궁에서도, 성 베드로 성당을 보면서도 느껴지지가 않던 초월적인 무언가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느껴졌다.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두었기에 다소 먼 발치에서 감상해야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가까이 가도록 허용을 해 주었다고 해도 그렇게 가까이는 다가가지 못했을 것 같다. 미켈란젤로가 그 작품을 왜 만들었는지, 누가 주문을 한 것인지 등에 대한 궁금증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완전하게 압도적이었다. 마법적 결계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 결계가 풀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에게는 무한정의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재차 뒤를 돌아보며 피에타로부터 멀어졌고,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꽂힌 베드로 광장을 지나 바티칸을 빠져나왔다.
여기까지가 처음 방문했던 로마에 대한 기억이다. 그 외에는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젤라또를 사먹었던 기억,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기억, 해질녘에 로마 시내를 걸으며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고대 건축물과 분수와 광장들을 즐겼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그 다음 행선지인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어떻게든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만큼 곤란한 새벽 시간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