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공항, 공항 비자, 숙소
비행기는 카이로 공항에 늦은 밤에 착륙했다. 기체를 벗어나 진입한 공항 터미널은 마치 고속버스 터미널같았다. 카이로 공항은 작고 낡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집트를 알지만 이집트에 오는 사람은 극소수다. 특히나 무더운 한여름에는 더 그러하다. 카이로 공항 역시 후덥지근했고 많은 사람이 몰리지도 않았는데 입국 수속이 밀렸다. 수속 창구가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항에서 중요한 일을 해결해야 했다. 이집트 입국에는 사증(비자; visa)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이집트 비자는 카이로 공항에 내려서 돈을 주고 사면 된다고 했다. 개념상 납득이 되지 않았기에 불안했다. 사증은 그 나라에 입국해도 좋다는 사전 허가증이다. 공항에서 돈을 주고 사는 사증은 사증으로서 의미가 없기에 그런 식으로 사증을 받는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는 힘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알아본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카이로 공항에서 입국 거절을 당할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정보를 다시 찾아봤지만 모두 하나같이 '이집트 비자는 카이로 공항에서 산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런 나라가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돈을 주고 사는 비자는 '공항 비자'라고 불렸다.
아니나다를까, 입국 수속 창구로 가는 길목에 공항 비자를 파는 창구가 보였다. 가격은 이집트 파운드가 아닌 미국 달러로 지급해야 했다. 당시 한국 돈으로 이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달러를 내밀자 비자 창구 직원은 '비자?'라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표같이 생긴 무언가를 뜯어다 내 여권에 붙이고는 얼마 안 되는 거스름돈과 함께 돌려주었다. 살면서 처음이자 현재 기준으로는 마지막으로 겪어 본 공항 비자였다.
공항 비자가 붙은 여권을 들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택시 기사들이 온갖 나라 말을 하며 달라붙었다. 출발 전 한국에서 알아 본 정보와 동일했다. 그 정보를 준 사람들은 '공항에서 시내까지 얼마 이상은 내지 마라'고도 알려주었다. 당시 이집트 물가는 워낙 싸서 택시비 사기를 당한들 손해액은 몇천 원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한국 돈 몇천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리스에서 사치스러운 숙박비를 지불한 후였다. 불필요한 지출이나 손해는 삼가야 했다.
아테네에서 숙박 문제로 곤혹스러웠기에 카이로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이집트는 숙박비가 무지하게 저렴했다. 카이로에서 예약한 방은 침대가 두 개인 넓은 방이었는데 당시에 하루에 만 원도 안 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가격은 더 내려가서 최남단인 아스완 같은 경우 적당한 크기에 에어컨과 샤워실까지 딸린 방이 하루에 한국 돈 삼천 원 수준이었다. 물론 남루한 방에 시설은 허름했지만 그 가격에 그 정도 방이면 배낭여행객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어쨌든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야 했고 그러려면 택시기사와 흥정을 해야 했다. 시험삼아 몇 명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물어보니 가격이 제각각이다. 나도 흥정에는 딱히 소질이 없어서 그 기사들과 원하는 가격을 맞추는 흥정을 할 자신이 없었다. 피곤한 상태여서 흥정 자체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 기억에 그 때 내 눈에 흥정 대열에 끼지 않은 채 자신의 택시 옆에서 가만히 담배를 태우던 택시 기사가 들어왔던 것 같다. 나는 그 기사에게 가서 숙소 주소까지 얼마인지를 물었고 그 기사는 'by meter(미터기 대로)'라고 대답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택시를 탔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교통 체증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카이로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한지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이 완전히 깨게 될 운명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묵을 방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넓고 낡고 허름한 방이었지만 그 가격에 그렇게 넓은 방을 잡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했다. 낡든 말든 잠을 자기에 충분하고 에어컨 나오고 물만 잘 나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이집트에 입국하기 전에 내가 상상한 이집트는 온갖 신비한 수수께기가 가득한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걸맞는 분위기를 지닌 나라였다. 국민 소득이 낮고 가난하고 독재 정권이 계엄령을 내린 상태라는 사실은 조사를 통해 이미 알긴 했지만 그래도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품위가 느껴지는 어떤 분위기가 풍겨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착륙 후 공항 비자를 받고 입국 수속을 하고 힘겹게 택시를 타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환상은 풍선이 터지듯 부서져버렸다. 당시의 이집트는 그저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일 뿐이었다. 마음 한 켠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그 서글픔은 날이 밝은 후부터 느끼게 될 감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