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잘 들고 타박한 언덕 아래였지, 나지막한 언덕이 둘러싸서 따뜻한 곳이었재. 막 걸음마를 떼는 꽃사슴 두 마리가 종강거리고 있는 거라, 너희를 연이어 낳을라고 그리 꿈을 꾼 거 같아"
함박웃음을 띄고 말하던 엄마 얼굴을 그때 좀 자세히 볼 걸 그랬다. 연년생으로 낳고 보니 그 꿈이 딱 맞았다고, 우린 자랄 때 덩치가 얼추 비슷하여 쌍둥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차츰 동생이 반칙하며 덩치를 불리면서 댓 살부터는 쌍둥이냐의 질문보다 누가 언니냐고들 물었다. 그때부터 늘 언니를 이겨먹었다. 내 맘대로 해서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
언제였을까? 시장에서 뭔가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부득이 내가 들고 가마 언니 것을 뺏어서 들고 오다가 그걸 왜 뱅글뱅글 돌리며 깡충거렸는지. 그만 손잡이만 덩그러니 남고 들통이 떨어져서 날아가 버렸다. 방금 그릇집에서 사 온 플라스틱 들통인데, 연년생 언니가 들고 왔더라면 차분히 잘 가져왔을 것을. 엄마가 '아이고!'를 외는 순간 저만치 달아난 통은 벌써 땅에 처박혀 깨어지고 말았다.
"00가 들고 갔으면 가만히 들고 왔을 긴대! 네가 왜 받아서 들고 온다고 했냐"부터 된 통 야단을 들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금방 나가떨어질 줄 누가 알았냐고!"
아깝고 어이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넘쳐나고 좌충우돌 자랄 때는 그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위로 딸, 아들이 있고 아래로 연년생인 우리 외에도 막내가 하나 더 있다. 아버지 엄마를 포함해서 일곱 식구 대가족이었다. 아이 둘을 키워보니 자그마하시던 엄마는 우리 다섯을 정말 어떻게 키웠을까 싶었다. 빨래며 음식이며 거기에 농사일까지 하고 사셨으니 한평생이 그냥 일 속에서 사신 것 같다.
5남매가 둥실둥실 자랄 때 그래도 그때가 재미났다고 했다. 남들이 딸내미 많은 집이라 해도 애들을 앞세우고 길을 가면 아버지는 입이 귀에 걸렸다고 엄마는 자주 말씀하셨다. 우린 누군가의 기대되는 아들 딸이었다. 그 아들 딸들이 좀 정다웠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을! 그네들의 관계는 썩 그리 좋지 못했다. 부모님이 여기시는 우리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그 역시도 좋은 점수는 못될 듯하다. 아마 '원수댕이'들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지금 내 마음속에 남은 부모님과 관계는 봄이다. 솔솔 잎이 피고 공기마저 상쾌하고 감미로워지는, 지천에서 꽃이 피어나는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