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야
작은 방에서 쌀을 가져온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쌀이든 볼을 토스했다 냉동실을 정리하며 나온 '자투리' 만두들을 새로이 깨끗이 씻은 냄비에 물을 받고 냄비 안으로 모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조금 모질 한 거 같아 '새'만두도 뜯어 몇 개 넣었다 그리고 냉동실에 조금 남아있던 손질해둔 파도 모조리 넣었다 불을 중불로 맞추고 나는 치즈돈가스를 뜯어 에어프라이어에 종이 호일을 깔고 총 3개 중 2개를 200도 온도에 10분간 돌렸다 아쉽지만 치즈돈가스 1개와 새로 뜯은 만두는 다시 냉동실로 돌아갔다 만둣국은 어느 정도 물이 끓고 간장을 넣어 간을 마무리하고 만두 1개를 국자와 숟가락으로 으깨주였다 나는 만둣국을 끓일 때 꼭 만두 하나를 으깬다 그러면 뭔가 더 맛있다
내가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엄마는 나에게 받은 쌀을 씻어 주었고 씻은 쌀을 받은 나는 밥솥을 가동했다 이제 30분이 지나면 맛있는 밥이 완성될 것이다 둘째의 점심도 비장의 무기, 후리카게를 뿌릴 거라 밥만 준비되면 된다 점심 준비도 어느 정도 끝이 났다 주방을 맡고 있는 엄마도 끝이 보였고 둘째도 티브이 보며 잘 놀고 있다 한숨 돌리려나 싶었는데 신호가 왔다 애써 외면해왔던 '볼일'이었다 안 봐도 뻔한 화장실의 상태를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아서 거실 청소 도중 참다가 이러다 쌀 거 같아 화장실에 한번 갔었었다 냉장고 상태와 집안 꼬락서니가 '으악'에서 끝난다면 화장실은 정말 소스라치게 깜짝 놀랄만한. 말 그대로 <경악>이란 소리다
잠깐 앉는 변기도 제대로 안 닦여 급한 와중에 물티슈를 가져와 빡빡 닦았었다 그 후 신호가 왔지만 애써 무시한 체 가지 않았고 이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마려웠다 솔직한 심정으로 참을 수 있다면 끝까지 참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적다 보니 도저히 화장실만은 적나라하게 쓸 수 없을 거 같다 비록 내가 아파서 지금 친정에 있지만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저 집은 분명 '내'집이다 밖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잠깐잠깐 아이들을 봐주던, 휴무에만 봤던 사람이 24시간 내내 붙어서 하는 '육아'란 당연히 정신없고 정리도 안될 것이다 삼시 세 끼만 다 잘 챙겨 먹어도 베스트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해는 하지만 분명한 건 저 집은 내 집이라는 사실이다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싶었던 남편의 집.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남편집이 나의 집이었다 동네 사람들~ 집안 꼬락서니 좀 보세요~ 돼지우리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내 아이들을 키우네요 아이 더러워~한 게 누워서 침 뱉기였다 아무리 엄마인 내가 <부재> 중이라지만 심각한 집안 상태와 꼬질한 아이들에 좀 많이 충격받았었나 보다 얼른 나아야 집안을 볼 텐데 저 꼬락서니는 좀 아니지 않나 저 꼬락서니를 보고 내가 집안일할 거 같아서 외면하기러하고 온 친정인데, 한번 집으로 가니 각오하고 왔음에도 예상을 아주 한참 많이 뛰어넘었다 딴 건 몰라도 화장실만큼은 까지 말아야겠다 한마디만 말하자면 내가 적은 것들 중 가히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나만 없는 내 집
.. 화장실을 다녀왔다 손을 아주 박박 씻었다 주방으로 가 중불이었던 만둣국의 가스레인지를 껐다 밥이 되려면 멀었는데 너무 끓으면 만두피가 흐물 해져서 벗겨질 거 같았다 불을 끄고 에어프라이어에 10분 돌렸던 치즈돈가스를 뒤집어 10분 더 돌려주었다 그러던 사이 맛있는 냄새가 안방까지 갔는지 둘째가 냄새를 맡고 거실로 나왔다 아직 밥은 안됬는데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쾌속모드가 있지만 그러면 밥맛이 조금 떨어진다 '아직 안됬어 되면 바로 밥 줄게'타이르며 가까스로 티브이가 있는 안방으로 돌려보냈다
어느새 엄마는 주방을 마무리하고 베란다로 나가 내가 내놓았던 냉동고 비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 식탁에 앉았다 아침과 달리 깨끗한 거실이, 내가 아프기 전 거실과 같아 보여 느낌이 이상했다 그간의 일이, 결코 짧지 않은 약 3개월 동안의 일들이 꿈같았다 어서 나아서 나도 친정에서 말고 내 집에서 가족과 '함께'살고 싶어졌다 괜히 코끝이 찡해올 때 밥솥에서 김을 내뿜었다 정신이 퍼특 들었다 센치해지지 말자 곧 돌아올 집이니까 치이이이 내뿜는 김소리에 안방으로 보냈던 둘째가 두리번거리며 나왔다
밥솥에서 김이 빠졌단 소리는 곧 밥이 다 된다는 소리. 두리번거리며 나왔던 둘째의 레이더망에서 베란다에 있는 할머니를 포착했다 다행히 주방 쪽으로 오지 않고 베란다로 갔다 둘째가 베란다에 내려가자 나는 베란다 문을 잠가버렸다 문을 잠그자 엄마는 당황했지만 둘째는 잠긴 줄도 모르고 오로지 할머니였고 잠구든 말든 자신만 보는 둘째에 나의 엄마는 웃고 말았다 나는 이 둘에게 밥이 다되면 열어주겠다 하고 잠시만 있으라 했다 잠시 식탁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데 밥솥에서 완료가 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밥이 다 되었다 씻어놓은 주걱을 들고 밥솥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밥이 아주 잘 된거같다 잠시 기다린 후 갓 지은 밥을 저어주었다 역시 아주 밥이 잘되었다 찰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