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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Mar 22. 2024

중간점검 차 들렀습니다

문을 열어주세요

  쓰고 있는 글이 점점 길어져서 이대로 가다간 언제 업로드할 수 있을지 몰라 일단 글을 씁니다. 잘 지내시나요? 점검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뭐라도 좀 점검해 보려고요. 다들 어떻게 지냈는지 캐묻고 싶지만서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테니 넣어둘게요. 그래도 궁금하니까 흔적 남겨주시면 고맙고요. 저는 브런치에 업로드만 안 했을 뿐이지, 한 달간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쓰며 지냈습니다. 대부분은 편지였어요. 아무래도 제가 요즘 편지 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공간을 너무 방치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기습 적으로 왔습니다. 참고로 캄보디아 여행기를 쓰고 있어요.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을 정제해서 담으려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네요. 공들여 쓰는 글이 오랜만이라 더 어려운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 오늘은 그냥 편하게 편지처럼 이야기나 하다 가렵니다. (노가리나 깐다고 하려다가 참았어요. 이미 이렇게 적은 이상 안 참은 거지만요.)


  안부는 이 정도로 되었으니, 좀 더 정형화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에 대해 좀 말해보려고요. 저는 정말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인간이거든요. 생각의 범주를 정리할 수도 없어요. 모든 생각이 종잡을 수 없는 형태로 튀어나가기 때문이죠. 야생양과 가축화된 양의 품종 차이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검색하다가 중세시대 공성무기의 어원으로 빠지는가 하면, 갑자기 아카데미 시상식을 상상하며 성공한 동양인 배우로 수상 소감을 남기다가 인종차별과 성착취에 대한 짤막한 연설을 덧붙여 이슈가 되는 지점가지 갑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복싱을 배울지 주짓수를 배울지 계속 클라이밍을 할지 고심해요. (지금은 역시 클라이밍을 계속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정말 생각을 안 하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의 서류더미를 폭파시키는 애니메이션까지 상상한다니까요? 중증 생각 과잉 인간이죠?


  그런데 이번 주에 처음으로 생각을 비우는 데 성공했어요. 이걸 성공이라고 봐야 하나 싶지만, 뭐 어쨌든요. 제가 판단하기로 정말 비효율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제가 무용한 것을 사랑한다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효율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진짜로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마치 냉장고의 위치를 침실로 옮겼다가 거실로 옮겼다가 다시 부엌으로 돌려놓는 수준의 알 수 없는 일을 했어요. 그걸 3시간째 했을까요, 머릿속에 핑클의 노래가 한 곡 반복이 되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몸만 움직이는 저를 발견했어요. 생각을 비운 거죠. 효율과 비효율을 따지면 스트레스가 들어차니까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기특한 제 뇌 같으니.


  그 옛날 소승불교의 수도승들이 왜 고행을 한 건지 알 것 같아요. 몸이 힘들고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극치에 도달할 때, 그때 뇌가 생각을 딱, 하고 멈췄을지도.... 요? 싯다르타는 그거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했겠지만, 범인인 저는 이런 해석이나 하고 있네요. 저 또한 싯다르타처럼 더 지고한 상위 가치를 추구하고 싶으나, 자본주의의 구렁텅이에서 일신의 생존과 고양이의 삶을 책임져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한 때는 이런 괴리가 저를 정말 괴롭혔는데, 이제 정말 찌든 사회인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떠신가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놓고, 엄청나게 길고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마냥 풀어놓았네요. 쉽게 바뀔 수 있으면 그게 습관이겠어요? 제가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요. 이러다 보면 다시 처음처럼 타인의 평소와 습관, 생각과 마음, 가치관과 태도가 다시금 궁금해집니다. 호기심을 놓을 수 없는 자라서 생각에 얽매인 사람인 저는 질문을 던질 듯 말 듯한 상태로 사라지겠습니다. 다음번에, 꼭 캄보디아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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