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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Apr 17. 2024

여러 번 쓰다.

1. 입안이 쓰다

  한 달째 입병을 달고 산다. 알보칠과 오라메디 때문에 말 그대로 입 안이 쓰다. 스트레스를 줄이란 말이 스트레스다. 나라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서 받겠는가? 3주 내내 열이 났던 것, 목이 붓지도 않았는데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프던 것, 전부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 실조증 때문이란다. 스트레스를 외부 요인으로 돌렸다. 내게 이유 없이 폭언을 한 사람, 합리적이지 않은 시스템, 수많은 꼰대, 꼰대, 꼰대.

  꼰대란 무엇인가? 사전이 아니기에 정의할 수 없다. 다만 꼰대의 수많은 특성 중 하나를 안다. 꼰대는 지가 꼰대인 줄 모른다. 환장할 노릇이다. '나처럼 열려있고 똑똑한 사람이 어딨어?'라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지가 꼰대인 줄을 모른단 특성과 유사하게, 보통은 빡대가리들이 자기가 똑똑한 줄 안다. 이 빡대가리들 때문에 평생을 다 합쳐도 1시간도 안 들었던 반야심경을 12시간이나 들었다. 사리자여, 모든 것은 공에 불과하나니 진정하여라. 하지만 도무지 진정이 안됩니다, 이것은 무엇의 문제이나이까? 일단 내 탓은 아닌 걸로 하겠나이다.

  이런 정신으로 한 달을 버텼다. 친구를 위로할 때마다 버릇처럼 외치던 규칙이 '내 탓 금지, 무조건 남 탓'이다. 정말 순수하게 남 탓이 가능했다면 입이 쓰지 않았을 거다.



2. 마음을 쓰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제가 욕먹은 것도 싫고, 불합리한 것들도 싫고, 이렇게 쌓여서 그냥 다 화가 나요.


  "여전히 이해가 안 가요, 불합리를 이야기하는데, 이미 그런 것들은 많이 사라졌잖아요? 미친 사람에게 당한 건 지나 보낼 일이죠.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이 화가 났어요?"

  그러게요, 모르겠어요. 사실 저 자신한테 화가 났나 봐요.


  "왜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사실 제 탓도 있어요. 나가면 되는데 나가지 않기로 선택한 제가 한심해요. 그러면서도 명분을 찾아요. 다들 제게 때려치우라고만 말해요. 저는 명분을 앞세워 허세를 부려요. 전 늘 그랬어요. 무엇이든 관두질 못했어요. 이별을 말하는 것도 못하고요, 남의 눈치를 보기에 도망도 못 쳐요. 그럴싸한 구실이 생길 때까지, 이 정도면 적절하다 싶을 때까지, 아니면 타인이 먼저 말할 때까지, 저는 늘 먼저 관두지 못해요. 그 많은 그만 둘 이유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만두지 않을 이유만 찾아요.


  "그 많은 그만 둘 이유가 있음에도 그만두지 않는다는 건요, 그건 말이죠, 그만두지 않을 때 당신에게 돌아가는 게 더 컸다는 거예요. 그게 왜 화가 날 일이에요?"

  ...... 모르겠어요. 속상해요.


"그렇게 힘든데도 늘 잘 버텼네요. 잘 버틴 당신에게 그렇게 화가 나있으니 더 속상하겠어요."

저 정말 잘 버텼어요. 늘 잘 해냈어요


"그래요 진짜로 대단해요. 잘 해냈어요. 너무너무 잘해왔어요."

저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봐요. 저 정말 평생을 잘 버텼어요. 응원받고 싶었어요.


"아직도 화가 나세요?"

아뇨, 근래 들어 가장 후련해요.


"그래요, 스스로에게 화내지 말아요. 남들에게도 응원만 받아요. 그동안 정말 누구도 당신처럼 버텨낼 수 없었을 텐데도 버텨왔잖아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게 마음 쓸게요. 제 주변인들에게도, 그저 응원만 해달라 할게요.



3. (애) 쓰다, (시간) 쓰다

  아직도 입이 쓰다. 마음도 너무 많이 써버렸다. 충전할 시간을 갖고자 감정을 되짚는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기력이 충전되면 나를 안아줘야겠다. 세상이 참 왜 그리 각박한지, 왜 모두가 자신을 탓하지 못해 안달인지, 그렇게 채이고 채이면서도, 왜 자신을 질책하는지 잘 모르겠다. 모두가 '대단해, 잘했어, 잘 버텼어, 너무 힘들었겠다, 견뎌내느라 애썼어.'라는 말을 듣고 싶을 텐데. 쓸 게 너무 많아 애만 쓰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언제 마음을 쓸 수 있을까? 왜 다른 것엔 시간을 내면서 스스로를 안아주는 데엔 시간을 쓰지 않을까?


4. 글을 쓰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나도 당신도 참 애 많이 썼다. 그동안 생존과 생활을 위해 쓰기만 했던 시간을 이제 나와 당신에게 돌려주려 한다. 우린 삶의 한복판에서 버텨내느라 너무 힘들었다. 숨 돌릴 때도 됐다. 아니, 몸 말고 그냥 마음이. 셀 수없을 만큼 많은 마음을 써왔으니 마음에 숨 돌릴 틈을 선물하고 싶다. 사람이 참 우스운 존재라, 자신의 말보단 타인의 말에 더 영향을 받곤 한다. 내 말을 믿어줄 준비가 되었다면, 내뱉어 보겠다. 당신도 괜찮을 거다. 까짓 거 아니라면, 찾아와서 한바탕 내게 쏟아내도 좋으니 후련해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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