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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Jan 26. 2024

흰머리는 시작일 뿐

흰머리만 없으면 될 줄 알았어

새치를 발견할 때마다 늙는 것이 느껴져 그렇게 서러웠다. 32살. 숫자는 아직 한참인데 회사 화장실 세면대에 배 대고 거울에 붙어 새치 뽑는 모습이 처량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강력한 까만 머리 유전자를 타고나서 쉰이 넘도록 흰머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제 환갑을 몇 해 넘기셨으나 여전히 희끗거리는 정도일 뿐이지 염색할 정도는 아니시다.


반면 우리 남편은 20대 후반 큰 시험을 준비하며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 원래 마음 고생하면 하루아침에도 머리가 하얗게 센다고 해서 시험이 끝나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는 쭉 백발이었다. 우리 아빠와 동갑이신 아버님도 백발이시다. 시댁 안방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의 아버님은 오빠보다 젊으셨을 텐데 새하얀 걸 보면 결국 유전의 힘이 강력한가 보다.


젊은 나이부터 염색하는 오빠에게 베갯잇에 이염된다고 신나게 구박하고 대차게 비웃었는데, 유전자를 이겨내고 32살부터 꾸준히 새치가 나고 있다. 필시 이것은 나의 30대 초반을 일로 불태워서 일 것이다. 밤낮없이 일하고 생각하느라 생명을 끌어 써서인 것이다. 애써 새치라고 우겼는데 비중이 점점 늘어 이제는 정수리와 뒤통수에 뽑을 수 없는 양으로 늘어났다.


머리카락이 가늘고 길어 두툼한 손가락으로 흰머리 골라내기도 힘들다. 그나마 정수리 앞쪽은 보이니 눈을 치켜뜨고 가닥가닥 뒤져서 뽑아냈다. 하지만 뒤통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제는 처음으로 11살 딸을 불러 족집게를 쥐어주고 흰머리를 색출하라고 부탁했다. 나도 이런 장면을 책이나 영상으로만 봤지 막상 우리 엄마아빠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시킨 적 없는 요청이었다.


“대머리 될 것 같은데!”

성악설이 맞다. 의도 없이 순수한 딸아이의 소리에 마음이 더 서글퍼진다. 처음엔 신나서 뒤적거리며 까만 머리 다 쥐어뜯어놓고 나가떨어진 쪼꼬미를 대신해 작은 손거울을 대동했다. 한 손에 거울 들고 흰머리를 골라내기도 어렵고 뽑기는 더 어려웠으나 얇은 까만 머리들을 발라내어 하얗고 밝게 빛나는 아이들을 뽑아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분명 머리카락들 사이에 있을 땐 하얗게 보여 뽑았는데 막상 까만 패드에 놓으니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갈색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달마시안처럼 한 가닥에 까만 부분 흰 부분이 섞여있고 파뿌리 같았다 붓 같았다.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과 순서도 제각각이었다. 기전도 불분명한 흰머리 같으니라고!


눈 치켜뜨기 힘들어서 흰머리 뽑기를 그만뒀다. 머리를 묶고 세수를 하려는데 웬걸? 머리 뽑느라 가로로 패인 이마 주름에 눈이 간다. 하-





저는 나이를 먹는 것보다 흰머리가 느는게 더 두렵습니다.

혹시 또 두려운게 있으신가요?


@merry.mj.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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