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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토그래퍼 노정현 Oct 13. 2022

#1 어쩌다 사진작가

나는 왜 사진작가를 하게 되었을까


" 나는 살아오며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




그런 내가 타인의 행복한 순간을 담는 웨딩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하다.

더 이상한 건 이 일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란 것이다.



내 인생은 돌이켜봐도 좋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왕따 생활에 고등학교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급 학교라 나랑은 맞지 않았다.

노력도 없고 흥미도 없던 공부에 그저 그런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수의 추천을 받아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17년째 근무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치병에 걸리게 되고 또 지나다 보니 암에도 걸리게 되었다.

나에게 암인 것 같다고 알려주는 담당 교수님이 놀랄 정도로 나의 반응은 덤덤했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검사를 받으려 입원한 병원 안에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걸 생각하며

그동안 미뤄왔던 사진 작업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수술 전에 그동안 알고 지냈던 작가들과 작은 사진 작업실을 만들게 되었다.

각자 역할분담을 해서 계약과 꾸미기를 하면서 하나씩 공간들을 채워나갔다.


암 수술 후 나는 개복 후 아직 아물지도 않는 배에 복대를 차고 촬영을 하러 갔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내 사진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주변에 나를 걱정해주는 모든 지인들이 넌 수명을 깎아서 사진 찍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을 잡고 촬영과 병원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찍고 싶은 모든 걸 찍었던 행복한 시간은 잠시 두 달도 되지 않아

불치병의 끝이 오게 되어 잦은 호흡곤란과 빈혈 , 쓰러짐 , 부종으로

잠시 사진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몸 담고 있던 회사가 힘들어져 마음까지 힘들어졌다.

그 회사가 힘들어지면서 받지 못한 월급들 , 만기 된 적금도 빌려주었고 내 카드로 카드론도 받아주고

오래 일하면서 생성된 퇴직금까지 받지 못하게 되었던 터라 심적 부담이 컸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무튼 이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내가 뭘 잘하지?라고 생각을 했을 때 답이 나오는 건

의외로 하나밖에 없었다.



" 사진으로 먹고살아보자 "



오랫동안 무역과 유통을 하는 회사에 있었으면서도 나는 그 일을 잘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하던 일을 제외하니 할 수 있는 건 사진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혼자 사진을 찍어오며 기초 조명 지식과 스튜디오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던 나에겐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동호회 활동에서 잠깐 알게 된 형님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탈을 해 스튜디오 촬영 경험을 쌓으며  스튜디오를 준비할 생각으로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평소 나를 좋게 봐주었던 형님과 이야기가 되어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사진 취미를 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출근할 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압박으로 다가오던 회사 생활과 달리 여기에서는 내가 노력한 만큼, 잘하는만큼 인정을 받고

부족한 부분은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맞춰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찍고 싶은 상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하게 기획한 커플 촬영을 하게 되고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남의 행복을 보면서 나까지 행복해 진다랄까?

유튜브보다 보면 꽁냥꽁냥 거리는 커플이나 부부를 보며 보는 우리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그린 기분처럼 사진 생활을 하며 느껴본 적이 없던 기분이었다.

그래서 모든 기획 방향을 바꿔 레드오션이라 생각했던 웨딩 스냅으로 상품을 변경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커플에게 부탁하여 샘플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 찍게된 웨딩스냅 샘플촬영본



"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뭔 일이니 "


처음에 큰 기대를 하고 찍었던 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했기에

큰 기대 없이 찍고 온 사진을 내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휴대폰에 수없이 많은 알람과 디엠이 와있었고 게시글이 엄청나게 많은

조회수와 좋아요 댓글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게시글은 지금 페이지뷰가 600만이 넘어가고 좋아요 수와 23만이 넘는 좋아요 로

베스트 게시글이 되었고 그다음 게시글 또한 계속적으로 10만이 넘는 좋아요를 받게 되었다.


정말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준 게시글




다음 게시글도 많은 뷰수를 기록했다.



당일날 스튜디오 예약 관리 채널에는 많은 예약문의글들이 들어와 있었고

우린 갑작스러운 문의글들과 예약들로 갑작스레 회의를 하고 금액과 상품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몸이 자주 아프고 병원을 일주일에 세 번을 가게 되어 주말 포함 총 4일을 일할수 있는데

한 달 스케줄이 가득 채워지는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 믿어지지 않았다.


부산의 밤 남포동에서의 웨딩스냅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담는 이 직업이 나에겐 천직이다.



요즘 촬영하기 전 클라이언트 분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 제 사진은 화사하고 사람이 예쁘게 나오는 사진들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제 사진을 두 분에게 5년 , 10년 혹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나 보게 되었을 때

  두 분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더 많이 웃어주시고 많이 안아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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