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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zu Oct 13. 2022

영화 컴온컴온 '어린이라는 세계'




올해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에 제일 좋았다. 이후 더 좋은 영화를 마주할지도 모르지만 저 영화를 본 7월의 여름 기준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가을이 된 지금도 이보다 좋은 개봉작은 만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올해가 끝나려나 싶어 조금 쓸쓸하지만 이만큼 마음을 충만하게 해 중 영화를 만난 것에 감사해 본다.


스크린을 통해 볼 때, 흑백영화가 주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다. 흑백 너머 색채를 상상하게 되고 어딘가 건조한 느낌을 받는. 버석하고 정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중간중간 들어가는 인터뷰의 대답이 모두 좋았다. 아이들의 대답은 순수하면서도 날 것이라 꾸밈이나 허세가 없다. 정확히 중점을 관통하여 어른들을 놀라게 만들면서도 특유의 천진함이 있다. 뜻밖의 답변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처럼 마음이 이리저리 튀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답을 놓을지 기대가 되어 가슴이 기분 좋게 설레었다.


조니가 제시를 돌보겠다 했을 ,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끼긴 했다. 제시는 아름다운 눈으로   없는 모호한 감정을 내비친다. 자꾸만 미운 말을 하고 고약한 행동을 한다. 제시의 행동과 말에 계속 화가 났다.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니가 치미는 분노를 자제할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내가 저기에 있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을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제시의 엄마가 그 아이는 두려움을 표출하고 있는 거라 했을 때, 어딘가 허탈했다. 나는 철저한 어른의 시선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제시를 투영하고 있었다. 조금 더 얌전하기를, 조금 더 예쁜 말을 하기를, 규칙을 지켜 주기를. 아이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데. 제시는 말 그대로 어린 아이다. 불안한 자신의 세계에서 무력하게 보호자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생각해 보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작은 아이. 그런 아이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는 걸 어른인 난 바보처럼 몰라줬다. 내가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걸 또다시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이토록 어른의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그러니 아이들의 맑은 소리를 가만 청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편협이 깨어지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때까지.



조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장실 안에서 아이가 죄송하다 했을 때 마음이 떠내려 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고아가 되고 싶다고 하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이의 세계에서 부모란 얼마나 무한한 걸까 생각했다. 나도 어릴 때에는 엄마의 손과 미소가 나의 전부라 믿었을까? 제시는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제시의 엄마가 조니에게 내 인생이 그래. 엉망진창이야.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라고 솔직하게 말할 때 난 그 대화가 몽땅 너무 좋았다. 어딘가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고받는 대화들이 대부분 좋았지만... 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문자마저도.


남성의 서사이지만 육아를 하며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와, 낙태는 온전히 자신의 자유라는 걸 언급하는 부분도 좋았다. 덤덤히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좋아한다.


아이가 조니에게 남긴 메시지는 그간 아이에게 들었던 온갖 감정을 보드랍게 뭉쳐 차곡차곡 마음에 담게 한다. 아이가 시간이 많이 지나 그날의 기억과 대화를 잊는다 해도 조니는 잊을 수 없으리라. 그건 아이가 조니에게 남긴 관계이자 성장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인터뷰는 계속된다. 꼭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래도록 지속되는 인터뷰는 영화의 여운을 계속해서 담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소리를 담는 것은 순간을 영원하기에 근사하다 말한 조니처럼, 난 이 영화를 남기고 싶다. 영원히 근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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