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독인 셀린 시아마가 이 영화의 극본에 참여했다는 것을 듣고 망설임 없이 택했다.
이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지만 결국 그 속의 관계들이 한 데 겹쳐지는 지점이 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시작점은 에밀리다. 그녀는 전화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월세를 반 내 줄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 에밀리는 여성 룸메이트를 원하지만 정작 찾아온 것은 근처 학교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카미유이다.
처음 카미유의 방문을 거절하던 에밀리는 그와 하룻밤을 보낸 뒤 카미유를 룸메이트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는 연애는 원치 않고 가벼운 사이를 원한다고 미리 언질한다. 에밀리 역시 이 말에 동의하지만, 흐르는 감정을 제 뜻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밀리는 여느 날처럼 장난스레 카미유의 방을 찾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호한 거절이다. 이 지점에서 에밀리는 카미유에 대해 뒤틀린 감정을 갖게 된다. 타인과 맺는 관계에 서툴고, 솔직하지 못한 에밀리는 카미유에게 향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뾰족한 말들로 그를 쑤신다. 그것이 그녀의 방패이자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사소한 사건으로 결국 카미유는 에밀리의 집을 나가게 되고, 그녀는 잠깐의 침묵 뒤 겨우 말한다.
"나 보고 싶을 걸?" 어쩐지 본인이 카미유에게 듣고 싶은 말인 것만 같아 에밀리를 쓸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노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삼촌과 부동산 쪽 일을 하다 늦은 대학생이 된다. 부푼 꿈과 달리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노라는 그들의 세상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 입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파격적인 가발을 쓰고 파티에 가면, 돌아오는 건 노골적인 시선과 천박한 희롱뿐이다. 우울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라는 그들이 자신을 유명한 포르노 배우로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문은 자극적인 것일수록 삽시간에 퍼진다. 피해자가 정해지면 다수는 아랑곳 않고 그 사람을 씹고 뜯으며 자신들의 즐거움을 새치 혀로 즐긴다.
결국 노라는 학교를 포기하고 부동산 일을 찾는데, 잠시 친구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 카미유를 만나게 된다.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세 명의 주인공이 그렇게 겹치는 것이다. 그 쯤 카미유는 에밀리에게 연락을 한다. 두 사람은 친구라는 이름 하에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으며 이따금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노라는 자신이라 오해받았던 포르노 배우인 앰버 스위트와 개인 채팅을 하다 스카이프를 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노트북 너머 서로의 숨소리를 덮고 잠에 들곤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기 결핍과 공허에 허덕인다. 사랑을 두려워하고, 갈구하고, 회피한다. 찰나의 충만일지라도 타인과 이어지길 소망한다. 닿아있을 때만큼은 모든 외로움을 외면할 수 있다는 듯이.
휘청거리는 인생 위를 걸으며 충동에 굴복하기도 한다. 외롭고, 또 외롭다. 사랑한다는 말이 어렵고 무섭다. 감정에 잠식될까 봐 두렵고 혼자가 되어버릴까 봐 두렵다. 온통 무서운 것 투성이다.
그들이 쥔 결핍의 조각은 미완성이라, 자신을 완성시켜줄 조각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것만 같다. 혼자이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고 관계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이질적일지라도 완벽히 외면할 수는 없는 건, 우리 모두 외로움을 안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