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Oct 08. 2024

내가 워킹맘이라니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워킹맘의 동료 찾기 보고서

어디서 나를 소개할 때면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덧붙곤 한다. 

워킹맘이라...그 단어에서 언제나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일하는 엄마라는 소리인데, 나는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하나. 일하는에 찍어야 할까. 엄마에 찍어야 할까. 

그렇다. 둘 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망설였던 건 둘 다 잘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사실, '잘'하고 싶은 욕망은 없다. 그냥 해내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잘'하지 못한 나를 질책하게 된다. 


내 경우에 방점은 '일하는'에 찍히곤 했다. 엄마라는 역할은 아직 10년 차가 되지 못했다. 반면에 일하는 경력은 2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 삶은 익숙한 것에 더 끌려 굴러가게 된다. 


둘째를 낳고 3개월 만에 복직한 뒤로는 매일매일 울었다. 돌이켜보면 '왜' 울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후배들이 잘 따라주지 않았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고, 일은 쌓여가고, 일거리를 들고 집으로 퇴근한 다음 애들을 재우고 일어나 혼자 밤에 남은 일을 처리하고. 뭐 그런 사소한 이유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한 건 '앉아서 마실 수 있는 커피' 덕분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그 커피가 나오기 전까지. 잠깐 동안 카페에 앉아 기다리는 5분의 시간. 그 시간에 오롯이 내가 나라는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만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그때 나는 외로웠다. 

100명 정도 되는 회사의 우리 부서에는 이런 이야길 할 워킹맘이 없었다. 그냥 나 되게 힘들어, 이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데 털어놓을 데가 없었다.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데가 없었다. 일어나서 애들 챙기고, 출근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일하고, 퇴근하고,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다시 일어나 일하고, 느지막이 잠들고. 이 루트가 계속 반복되었다. 유일한 내 시간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잠깐 앉아 멍 때렸던 5분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애들이 조금이라도 커서 내 시간이 약간이라도 늘어난다면,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 꼭 말해주리라. 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다른 엄마들에게 팁이라도 알려주리라. 아니면, 이 시기를 지난 선배 워킹맘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걸 공유하리라. 


그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을 무렵, 나는 그 생각을 잊었다. 


그 후로 오래 시달리던 격무로 인해 번아웃을 앓고, 그 번아웃을 벗어나기 위해 잠시 일을 쉬는 동안.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내 동료들을 찾아야겠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그 이야길 들어야겠어.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동료 찾기 보고서. 이 보고서를 쓸 수는 있을까? 좀 자신은 없다. 일단, 아는 워킹맘이 몇 명 없다. 누군가 이 브런치에 들어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댓글이라도 남겨준다면 그분부터 만나고 싶다. 내가 그분을 만날 시간은 있을까? 아니, 그분은 시간이 있을까? 이 보고서를 누가 읽어줄까? 

재미없고 따분한 워킹맘 이야기를 누가 읽을까 싶다. 그러니 이건 지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그냥 냅다 질러보는 이야기. 하지만 일단 질렀으니 가보련다. 

작가의 이전글 믿을 수 없겠지만 요가한 지 4년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