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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행성 과학자 Oct 14. 2022

안녕하세요, 저는 과학자입니다.

자기소개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백인 저학력 층의 28%만이 민주당의 힐러리를 지지했습니다. 반면 정통적으로 저소득층의 복지 감세를 주장해왔던 공화당의 트럼프 지지율은 무려 64%나 됩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마이클 샌델은 이를 능력주의 사회의 역설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저학력자들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기회' 라는 민주당의 프레임이 본인들을 실패자라고 낙인찍는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나에게 제공되는 복지 혜택보다는 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그들의 도장 위치를 결정한 것입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은 이처럼 어떻게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 걸로 '보이는지'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동의합니다. 비슷한 예로, 가끔 보이는 건설 현장의 안전제일현수막은 바깥을 향해서만 걸려있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역시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한 세상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 한 술자리에서 넌 꿈이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과학자가 꿈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행이 빵 터졌습니다. 그땐 저도 같이 웃었는데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업을 물었을 때 본인을 과학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히 저 초등학교 때는 과학자가 항상 장래희망 5순위 안에 들었는데 그 많던 친구들 중 아무도 꿈을 이루지 못한 걸까요? 과학자가 직업의 범주라고 얘기하지만 공무원도 범주고 선생님도 범주인데 유독 과학자만 없습니다. 어쩌면 모든 직업 통틀어 되기 가장 어려운 직업이 과학자가 아닐까 합니다.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브런치 직업 선택 란에도 과학자가 없고 연구원만 있었습니다.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 받은 지 이틀 만에 투덜대기는 제법 찔리지만 그래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그럼 과학자의 정의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단순하게 과학을 탐구하여 돈 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만, 그러면 유사과학론자들까지 해당되니 조금 더 수식 어구를 붙여야겠습니다. 공인된 국가/기관 등의 연구과제에서 과학을 탐구하여 돈 버는 사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여기서 기준을 조금만 더 높이겠습니다. '국가/기관 등의 연구과제에서 과학을 탐구하여 돈 버는 SCIE 출판 경험이 있는 사람' 이제 완성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과학자인데 논문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 꿈을 과학자라고 정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지금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도 과학자라고 적었으니까 좋게 말하면 초심을 잃지 않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꿈을 이루는데 20년이나 걸렸네요. 전 다른 사람들에게 연구하면서 신나 하는 과학자처럼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과학에 대한 흥미도 크고 모르는 무언가를 공부하여 드디어 이해했을 때 보람을 많이 느껴서 '사는지'와 '보이는지'가 일치하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사실 저년차때는 대학원 생활이 너무 갑갑해서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 것도 같은데, 경험과 지식이 점차 쌓이면서 정말로 연구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이 나의 성향과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또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주절주절 긴 스토리로 저를 과학자라고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신 연구원분들이 계시다면 한국 과학계를 위하여 본인도 과학자라고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제 첫 브런치 글이 공익광고 같아졌네요. 결론은 안녕하세요, 저는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과학자이고 브런치 작가로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초등학교 때 글쓰기 지도를 해주신 어머니가 제가 작가 됐다고 말씀드리면 아주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스웨덴에서의 포닥 및 주민으로서의 경험과 과거 대학원에서의 경험들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저를 블로그의 세계로 입문하게 해 주신 당근행성 토끼박사님께도 감사인사를 보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스웨덴왕립공대의 정문입니다. 학교도 조만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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