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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Jul 03. 2024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에 관한 추억




“요즘 애들 요말도 마요입맛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점심시간에 급식할 때면 홍역을 치른 다니까요김치는 절대 먹지 않으려고 해요김치가 무슨 혐오 식품이라도 되는 듯이 코를 막고 외면하고 생난리예요식 판에 몇 쪽을 올려놓으면 으악 하고 소리까지 지르는 애들도 있어요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해도 김치에 손을 대지 않는 아이들이 허다해요그렇다고 다른 음식을 잘 먹느냐 그것도 아니고요영양사 선생님이 영양가를 따지고 칼로리를 따지고 식단을 짜면 위생복을 입은 조리원들이 맛에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들어서 매일 몇 가지 새로운 반찬들이 제공되지만 아이들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사를 끝내고 말아요.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왔고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는 가까이 지내는 한 여선생님이 자신이 담임한 아이들에 대해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성장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먹지 않으면 어떡하죠?! 한참 잘 먹어야 할 나인데……”

내가 의아해 물었다.

“먹지 않기는요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기도 하지만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허겁지겁 신나서 먹겠지요애들 보면 영양상태가 보통이 아니 예요제나이보다 체중신장 다 초과예요먹지 않는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지요.

“……….   

 

나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니던 60년대를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해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이라 밥을 굶는 사람들도 많았고동냥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다리 밑에서는 거지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 아이들은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갔다어린 마음에도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운동장 가를 서성이거나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거나어디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에 점심을 싸왔다한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판박이였다.

도시락에는 가난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왔다보리밥에 반찬은 콩자반멸치볶음노란 단무지깻잎 장아찌 중에 한 가지였다. 달랑 김치만 싸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심한 아이들은 초라한 반찬을 내보이기 창피해서 도시락 뚜껑을 세워 가리거나 반찬통을 보이지 않게 덮어놓고 먹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도시락이었지만 간식 이라고는 구경할 수 조차 없이 밥만 바라보는 아이들에겐 그것도 꿀맛이었다설거지가 필로 없을 정도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은 약점이 있었다아무리 야무지게 반찬통을 신경 써서 간수해도 반찬국물이 흘러나왔다특히나 김치국물은 책보나 가방 안을 흥건히 적시고책이나 노트에 빨갛게 스며들기도 했다강한 김치냄새는 가방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배어 있었다


언제부터 인가 미국에서 원조를 받은 옥수수 가루로 빵을 만들어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점심대용으로 제공되었다도톰하고 사각으로 된 노란 옥수수 빵은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하지만 한동안 계속해서 먹은 아이들은 질렸는지 깨지락 깨지락 했다

나는 옥수수 빵을 공급받은 아이들에게 접근해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었다

처음에는 빵이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였지만, 나중에는 내 밥으로 허기진 아이의 배를 채우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이 사실을 엄마에겐 비밀에 부쳤다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셔서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하시는데더욱이나 잡곡을 싫어하는 내 입맛 때문에 한쪽에 쌀만 넣어 밥을 지어 도시락에 담고 작은 반찬 통이지만 몇 가지 반찬을 신경 써 담으신 후 예쁘게 수놓은 보자기로 두 개의 매듭을 만들어 싸 주시는 정성을 다한 도시락을 남에게 주는 것은 엄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 동냥하러 온 사람들에게 넉넉히 음식을 챙겨주고물건을 팔러 오는 상이군인이나 고학생들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으셨다더욱이나 엄마는 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분이셨다그것은 심성이 고우시다는 의미였다

내가 도시락을 옥수수 빵과 바꿔 먹었다는 사실을 아셨다면 “오기특한 내 새끼. 하시면서 엉덩이를 토닥여 주셨을 것 같다.

 

추운 겨울 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거나 몸상태가 안 좋은 날은 엄마는 점심시간에 맞춰 따뜻한 도시락을 교실까지 가져다주셨다.

새로 지은 밥이거나 안방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두었던 도시락이었다

가져오는 동안에도 살을 에이는 찬바람에 행여나 식을 세라 두꺼운 천으로 몇 겹을  두르고 오버 속에 넣어 두 손으로 품고 오셨다도시락을 나에게 건네주시며 웃는 엄마의 얼굴은 빨갛게 얼어 있었다.

 

까마득히 흘러간 학창 시절을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이다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중학교고등학교 때까지 10년 동안이나 함께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스탠으로 된 보온 도시락이 등장하여 따뜻한 국물이 있는 점심이 가능해진 것이 80년대이었으므로 60년대와 70년대 초에 초 중 고를 다닌 나는 전혀 혜택을 보지 못했다.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 파는 음식점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려 추억의 시간과 추억의 맛을 경험한다.

풍요로운 음식의 홍수 속에서 입에 짝짝 달라붙는 음식과 살면서도 가난하던 어린 시절 부실하기 그지없던 도시락을 그리워하는 것은 도시락 맛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으로 도시락을 싸 주시던 어머니가 그립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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