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첫 키스는 무슨 향기로 기억되나요?
엘리자베스 아덴 그린티
나는 향기를 좋아한다. 맨 처음 향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본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조향사였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도 매력적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향기’ 라는 것은 ‘존슨즈 베이비로션’향과 ‘클린앤클리어’로션 향뿐이었었다. 사춘기를 넘어서며 나는 향기에 더욱 민감해졌고, 향기라는 세계에 더욱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향수에 관심을 가졌었다. 학교 앞 팬시점에서 모으기 시작한 향수 미니어처들로 시작한 향기에 대한 관심은 조향사라는 꿈을 꿀 만큼 커져갔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극명하게 문과 체질인 나는 화학 공식을 외우다 지쳐 아주 잠깐 ‘조향사’라는 꿈을 짧게 꾸다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만들지 못하면 소유하리라, 라는 마음 속 외침을 실천하여 용돈을 쪼개고 모아 향수 미니어처를 모았다. 그리고, 소유할 수 없다면, 그 향을 머릿속에 각인했다.
모두가 풋풋한 첫 키스의 기억을 품고 살아갈 테다. 나 또한 그렇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첫 키스의 향기를 머금은 그 날은, 여름 향이 가득한 달콤한 민트 맛이 났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럴 것이다. 가끔 꺼내보면 아련하고, 귀엽고, 앙증맞고, 그러면서도 손으로 꼭 쥐어 터뜨려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한 첫 사랑의 추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괜시리 생각하면 양 볼이 발그스레해 질 만큼 오래된 일기장 같은 소중하고, 엊그제 같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꽤 오래전인 그 날, 당신은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당신의 첫 키스는 무슨 향기로 기억되는가?
비가 아주 많이 내려던 날이었다. 대학생이던 남자친구가 집 앞에 잠깐 왔다고 해서 나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고향에 내려와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한 상태였다. 소주 냄새를 없애려고 가그린을 했지만, 흘러나오는 알코올 냄새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하얀 긴 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팔뚝이 훤히 드러나게 소매를 걷어올려 입고 있었다. 그 팔목 사이로 좋은 향이 비 냄새와 소주냄새, 그리고 가그린 냄새에 섞여 내 콧속을 자극했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 향기였다.
우리는 여름비 냄새에 취해, 골목길 한 구석에서 둘의 입술을 포갰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졌다. 내 달콤한 입술과 그의 쿨한 입술이 만나 소주 냄새, 가그린 냄새, 그리고 그린티 향기로 파묻혔다. 8월의 향기였다. 심장이 터질 듯 나댔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길 기도했다. 신성한 첫 키스였다. 남자친구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고로, ‘성인’이며, ‘대학생’이었다. 든든했다. 첫 키스를 ‘어른’ 과 했으니 나도 ‘어른’ 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우리는 예쁘고 청량했던, 열아홉, 스무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