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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01. 2024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승'




영화 '피아노'





집이나 호텔은 뷰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된다.   뷰가 좋은 곳엔 어김없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자본이 자연을 잠식한다.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했던 이생진 시인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바다를 보러 가서 정작 바다를 이정표처럼 스쳐 지나치기만 했구나.  바닷가에 앉아 오래도록 수평선과 윤슬,  비릿한 바람에 섞인 햇살과 파도 소리를 고요히 담을 계획이 일정표에 없었던 거다.  바다는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보면 되는 거였다.   나는 그곳에서조차 효율성을 중시하며 멀티태스킹을 하고 온 거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오션 뷰는 감탄하면서 정작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 앞에선 심드렁했다.  입장료를 내고 바라보는 바다였다면 좀 달랐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마음을 정리해야 될 때 바다를 찾는 장면이 많다.  이런 설정에 타당성을 심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의 뇌는 외부로부터 위험이 오는지 숨어서 지켜보다가 뜻밖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경보를 울려 스스로 보호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해변에는 자신을 자극하던 도시의 생활 소음이 없다.  그래서 위협적인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도체는 완전한 휴식을 취한다.   바다 앞에서 뇌는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위협도 없음을 알아차리고 휴식을 취하는 거다.  그래서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질환을 덜 겪는다는 통계가 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  '해변의 수도승' /1809 / 캔버스에 유채 / 베를린 국립 미술관 






바다와 하늘이  그림을 압도하고 있고,  왼쪽 작은 언덕에 수도승이 서 있다.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승'이 완성되기 직전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귀부인이 이 그림을 본 뒤 남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가 '해변의 수도승'을 처음 본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바람도, 달도, 폭풍우도 없이 고요한 끝없는 하늘에...  차라리 폭풍우라도 있다면 움직임과 생명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오히려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텐데"라며 그림에서 느껴지는 처절한 고독과 공포를 전달했다. 




뤼겐 섬의 해변 



'해변의 수도승'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프리드리히가 자주 여름을 보냈던 발트해의 뤼겐섬 풍경이다.  일곱 살 때 어머니와 그 이듬해 누이를 잃은 프리드리히는 5년 후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형이 얼음 아래 빠진 그를 구하려다 익사하는 사고를 당한다.  뒤이어 또 다른 누이까지 사망하게 되니 프리드리히의 병적인 고독은 슬픈 가족사에서 출발했을 거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는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무한히 펼쳐진 자연 풍광을 바라보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대자연의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인간은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로 느껴진다.   




반면에 이런 해변을 보면서 우주와 일체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리학자들이 '대양감Oceanic feeling'이라 표현하는 이 극도의 상태는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파도와 조수의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바다는 그 어떤 것보다도 '영원에 대한 감각'을 살찌게 하는 순간적 운율을 나타낸다. 수평선이 소실점이 되는 바로 그곳이다."라며 사막의 고요함, 산 정상에서의 아득함, 우주의 광활함 등 다른 자연환경에서도 발견되는 이런 경험에 매료되었다. 




200년 전 프리드리히 그림 속 바다와 현재의 뤼겐 섬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자니 고려 말 시조가 생각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인간은 바람처럼 찰라를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니 자연 앞에서 미력한 인간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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