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완료형보다는 미래지향형일 때 더 설렌다. 여행을 다녀온 자의 소감을 들을 때보다 가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이의 사유를 듣는 것이 그래서 더 흥미롭다.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의 아내이자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엘레노어 코폴라가 80살에 연출한 첫 장편 상업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 그런 여행이 담겨있다. 하이틴 스타로 출발한 이 영화의 주인공 다이앤 레인은 나이 듦이 노화의 동의어가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을 다섯 글자로 압축하면 우아한 품위다.
영화 '파리 가는 길'의 다이앤 레인
영화 '파리 가는 길'은 칸에서 파리까지 앤(다이앤 레인)을 빠르게 모셔다 주면 끝나는 영화다. 하지만 운전을 맡은 프랑스인 자크는 최단거리가 아닌 놓치면 안 될 숨은 명소로 그녀를 완행열차 속도로 안내한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생 빅투아르 산'이 보이자 관객도 함께 설렜을 거다. 세잔의 그림 속 '생 빅투아르 산'이 바로 그곳에 있는 거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고흐와 한 몸인 것처럼 생 빅투아르산과 세잔은 한 몸이다.
폴 세잔,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 1887년 경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개인 소장, 1888-1890년
폴 세잔, 벨뷔에서 바라본 생 빅투아르 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882-1885년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 1885-1887년
세잔에게 생 빅투아르 산은?
생 빅투아르 산 전망대에 생전에 세잔이 이곳에 와서 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담겨있다.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기슭으로 난 길,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1898-1902년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소묘, 루브르 박물관, 1900-1902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취리히 쿤스트 하우스, 1904-1906년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는 데 100회의 작업을 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힐 만큼 집요한 노력형 화가였다. 세잔은 말년 20년 동안 생 빅투아르 산을 80점이 넘게 그렸다. 1902년 레브로에 아틀리에를 만들어 생을 마치는 1906년까지 작업을 하는데 이곳은 생 빅투아르 산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다. 세잔의 산 그림 연작 패널이 전시돼 있는 이곳에서 세잔은 이젤을 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 빅투아르 산을 다양한 관점에서 수없이 그렸다. 1882년에 생 빅투아르 산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세잔은 유화 44점, 수채화 43점에 이르는 연작을 남겼는데, 그가 생전에 이토록 생 빅투아르 산에 애착했던 이유는 뭘까?
은행원이 되길 바랐던 재력가 아버지의 뜻과 달리 세잔은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관계가 편치 않았을 거다. 거기다 경제적 지원까지 받아야 되는 상황이니 소심한 성격으로 표현됐던 세잔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은 세잔에게 숨구멍이며, 어릴 적 자주 오르내리던 고향 산은 말없이 그를 품어주는 위안처였을 거다.
엑상 프로방스, 폴 세잔의 고향에 있는 생 빅투아르산
생 빅투아르 산은 폴 세잔이 20여년 동안 그려온 나무가 없는 돌산으로 프로방스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험준한 산으로 꼽힌다. 바위가 석회암질이어서 맑은 날에는 광채가 느껴지고, 둔중한 덩어리감과 웅장한 봉우리로 일대 주변을 압도하는 장관을 보여준다.
폴 세잔, 고가교가 있는 풍경( 생 빅투아르 산) .1885-1887,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87-1890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과 샤토 누아르, 필라델피아 미술관, 1904-1906년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타이슨 컬렉션, 1904-1906년
세잔의 뮤즈 '생 빅투아르 산'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파 미술은 사물의 객관적 묘사를 중시하는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했다. 빛의 효과에 의지해 대상을 표현하려 한 것은 사실주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지만, 이런 시도는 매우 주관적인 회화를 창출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잔은 "나는 지속적으로 자연을 탐구해왔다. 본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을 그려야 한다" 란 말을 했다. 이 말은 인상주의 화풍에 사실주의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던 세잔에게 단순한 시각적 사실로서의 사과보다 그 사과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 묘사가 더 중요했던 거다. 그렇기에 순간적인 빛 너머의 존재를 보고자 했던 세잔에게 관찰은 단순히 보는 것 그 이상이었다. 이런 지독한 탐구적 관찰은 세잔을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했고 '색'의 혁명을 이루게 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생 빅투아르 산'이다.
폴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 연작을 가까이에서 보면 거칠고 복잡하기까지 한 방식으로 병치한 강렬하고 빠른 붓 터치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흐릿해 보여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생 빅투아르 산'과 풍경에 일어나는 빛과 그림자, 채광의 변화를 그림이라는 수단으로 번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잔은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떠오른 영감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풍경은 내 안에서 떠오른다. (중략) 색깔은 우리의 뇌와 우주가 만나는 장소다."
폴 세잔 / 생 빅투아르 산 / 캔버스에 유채 / 제작연도1904 / 필라델피아 미술관
세잔 '레로브에서 본 생 빅투아르 산, 1904~1906, 캔버스에 유채
세잔이 1902~ 1906년에 그린 <레로브에서 본 생 빅투아르 산>을 보자. 단순한 구성의 이 그림은 어지럽게 흩날리는 붓 자국 때문에 상당히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그림을 보면 세잔이 자연의 외양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만 보고 나무나 꽃, 집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 세잔은 사실적인 형상에는 관심이 없다. 여러 색들이 일종의 모자이크를 만든 뒤 우리의 고정관념에 의해 색채와 형상이 파악되기 전의 순수한 시각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연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세잔은 화가의 임무라고 보았다. 폴 세잔의 이런 시도는 입체파와 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