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단은 마치 13세기 대성당 정문에 새겨진 네잎 무늬 장식처럼, 계절의 리듬과 삶의 여러 일화들을 반영했다. 가게 주인이 신선하다고 보증한 넙치가 나오면, 다음으로 루생빌르팽 시장에서 프랑수아즈가 좋은 칠면조를 발견했기 때문에 칠면조 요리가 나오고, 아직 우리에게 이와 같은 요리법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 본 아티초크를 곁들인 사골 요리가 나오고, 바깥 공기를 쐬고 나면 배가 고파져서 저녁 식사까지 아직도 일곱 시간이나 소화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양갈비 구이가 나오고, 변화를 주기 위해 시금치 요리가 나오고, 아직은 귀한 살구가 나오고, 두 주 후면 더 이상 맛볼 수 없기 때문에 까치밥나무 열매가 나오고, 스완 씨가 일부러 가져온 나무딸기가 나오고, 두 해나 열리지 않던 정원 벗나무에서 처음으로 딴 버찌가 나오고, 내가 전에 아주 좋아했다고 크림치즈가 나오고, 프랑수아즈가 전날 주문한 아몬드 케이크가 나오고, 우리 쪽에서 내야 할 차례이기 때문에 브리오슈 빵이 나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김화영 옮김, p 13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 '프랑수아즈'는 화자의 외할아버지 사촌 동생인 고모할머니 딸 '레오니 아주머니'의 요리사이자 나중에 화자의 집에서 일하는 인물이다. 주인에게 헌신적이었던 프랑수아즈가 주인 가족을 위해 차린 한 끼 식단을 보면 요리사로서 그녀는 프로페셔널하다.
프랑수아즈가 주인 가족을 위해 차리는 한 끼 밥상에는, 작가의 표현처럼 '계절의 리듬과 삶의 여러 일화들'이 반영돼 있다. 가족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기호를 염두에 둔 그녀의 식단은 완벽한 무대감독이 연출한 작품 같다. 일상의 밥상도 특별한 날의 성찬처럼 차려내는 그녀의 진심은 메인 식사가 끝난 뒤 디저트 코스에서도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일부러 우리 식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특히 그걸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헌정된, 프랑수아즈의 영감이자 개인적인 배려인 초콜릿 크림이 나왔는데, 그녀가 재능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이면서도 어쩌다 우연히 만든 것처럼 덧없이 가볍게 제공되었다. "난 그만 먹을래요. 더 이상 못 먹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맛보기를 거부한다면, 그런 사람은 화가로부터 그림 한 폭을 선물로 받고 오직 화가의 의도와 서명만이 가치가 있는데도 무게와 재료만을 따지는 천박한 사람의 수준까지 당장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게다가 접시에 소스를 단 한 방울이라도 남기기라도 한다면, 곡이 끝나기도 전에 작곡가의 코앞에서 일어서는 것과 똑같은 무례를 범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김화영 옮김, p 131-132
' 이 모든 식사가 끝난 후에도'라는 묘사에서 드러났듯이 이미 준비된 식사만으로도 포만감이 한계치에 이르렀을 텐데, 식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사의 꽃은 디저트라는 말이 있듯이 프랑수아즈가 야심 차게 준비한 디저트가 남아있다. 고가의 호텔 뷔페에서 식사의 꽃 디저트를 배가 너무 불러 건너뛰고 올 수밖에 없던 기억처럼, 화자의 가족들에게 프랑수아즈의 디저트는 투 머치일 뿐이다. 그런 상황을 프루스트가 프랑수아즈 입장에서 절묘하게 묘사해놓은 대목이 맞춤복처럼 찰떡같이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