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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추상적인 개념을 3차원 공간에 가져온다

< 기획자의 실력_2 >

 우리가 주제나 테마라고 적고 떠드는 단어들은 대부분 3차원 공간으로 바로 가져오기 어렵다. 개념은 텍스트이고 공간은 비주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대나 공존, 협동과 같은 개념이나 가치를 전시공간에서 전달해야 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1) 근대혁명의 DNA를 나선형 구조의 공간개념으로      


  인위적으로 주어진 제한된 공간에 특정한 개념을 구체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간개념이라는 말자체가 애매한 데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시각화하는 과정은 계획단계에서만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말로만 떠들게 되거나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 쉽다. 


  하지만 계획된 개념은 반드시 공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시각화했을 때, 제안서에서는 특별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장표가 되기도 한다. 왜 이 공간을 네모로 하지 않고 타원형으로 했는지, 왜 굳이 가운데를 뚫었는지 그것의 확실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4개 층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건축물이었다. 1층에서 바로 4층까지 올라가 순차적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역동선 방식으로 제안하였다. 관람하는데 이탈 없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전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3개 층이나 같은 방식의 반복된 구조로 빠져나오려니 지켜보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콘텐츠에 있어서도 층마다 자주독립, 민주공화, 사회통합, 평화연대라는 다소 무거운 소주제가 펼쳐져야 했다. 쉬우면서도 하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했다. 바로 우리 민족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정신, 즉 근대혁명의 DNA를 가진 국민이 공통분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4개 층의 공간 구조에 DNA의 구심점을 축으로 하여 내려가면서 점점 DNA의 윤곽이 분명 해지는 구조를 마련하였다.      


  우리 민족의 DNA라는 개념과 형태적으로 떠오르는 나선형 구조를 입체적으로 살려 3차원 공간에 녹여내었더니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공간개념으로 탄생되었다. 나선형 구조는 실제 현장 어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공간구성은 그것을 기준으로 구획을 하고 중심을 잡기로 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해질 때마다 우리 국민의 혁명적 DNA가 비로소 더 강해지고 넓어  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제안_공간개념 >

     

2) 지상에서 하늘까지 물, 자연, 사람이 함께 가는 길로     

  애초에 공간개념을 따로 적용하기가 까다로운 건축물들이 있다. 비정형의 건축물이거나, 전시공간이 조각조각 나뉘어 있거나, 이미 건축물 자체에서 확실한 개념이 부여되어 랜드마크로 인식될 경우 등이다. 또 요즘은 실감영상 같은 미디어 연출로 전시공간의 형태가 아예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전처럼 실내공간의 구조가 가지는 미학적인 형태, 심미적인 아름다움, 기하학적인 매력, 시각적인 자극은 꼭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인테리어 구조물이나 장식을 위한 디자인이 많이 단순화되기도 했다. 리노베이션 주기가 짧아진 영향도 있고 메타버스 같은 가상환경의 일상화도 고정적인 전시환경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자는 공간개념이 점차 의미 없어진다고 하여 공간개념을 잡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눈으로 보이는 형태에서 차용한 공간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개념화하고 그것을 구체화하여 표현하려 노력해야 한다.      


  시화조력문화관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였는데, 거대한 건축물에 비해 전시공간은 협소하고 층마다 각각 떨어져 있는 경우였다. 2층의 상설전시뿐 아니라 1층의 로비, 원형극장, 다목적 강당, 어린이 공간을 비롯해 3층의 창업 및 전망공간까지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조성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었다. 계단을 기준으로 분절된 기능 공간마다 다른 형태를 하고 있어 하나의 구심점을 찾기가 난감했다. 해결방법은 각각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시나리오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우선 물 너머 물과 함께 흘러가는 공간적 연결을 위해 ‘Connected Waterway 연결된 물길’을 조성하고 층마다 인공적으로 연출된 다양한 공간 구조에서 때로는 정원을, 동굴을, 도시를 거닐며 전시 체험을 하도록 ’Companion Space 동반의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로비는 정원의 개념이고, 원형극장은 동굴이고, 전시공간은 빙하와 도시, 전이공간은 구름, 전망 공간 하늘이 되어 물의 순환이 연상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외부에서부터 가족형 해안공원의 루트를 따라 내부로 들어오면 물의 순환 길이 이어지고, 3개 층을 이동하면서 그 흐름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도록 계획하였다.      


  공간구성 개념은 최종적으로 물, 자연, 사람이 함께 가는 길로 제안하였다. 이 장표를 보고 설명을 들은 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공간을 떠올렸다.  어렵거나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개념일지라도 이렇듯 3차원으로 치환해 연상하면서 이야기가 이해되면 성공이다. 전시관 어느 곳에도 그런 길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사람들은 공간을 이동할 것이고, 그곳에서 전시 환경을 느낄 것이니까 말이다. 


< 시화조력문화관 제안_공간개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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