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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_1

< 떡과 바퀴벌레 >

by 한희

집을 결정한 건 나였다. 태경 씨 사무실과도 가까웠고, 1층이라 문을 나서면 바로 주차장이 있었다. 베란다 쪽에는 작지만 화단도 있었다. 집주인의 딸이 십 년 이상 살던 집인데 딸이 나간 뒤 처음으로 리모델링한 집의 첫 번째 입주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살던 집을 정리해 처음으로 함께 살림을 차렸다. 내 짐은 옷가지와 책 몇 권뿐이었고, 태경 씨는 크고 작은 가방을 여럿 가져왔다. 태경 씨 짐 들 중에 가장 자리를 많이 차지한 건 커다란 캐리어들이었다. 태경 씨는 1년에 한두 번, 미국 본사로 장기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 한두 번이 확정된 건, 이사 날짜를 정한 뒤였다. 살림을 합치자마자, 이별도 정해졌다.

“그래도 이제 우리 집이 있잖아.”

그는 떠나기 전에 살림을 합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지금 함께 맞춰 놓은 살림을 두고 먼 길을 떠나는 그가 서운했다. 무엇보다 혼자서 이 낯선 집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1층이라는 것도 불안했다. 나는 방마다 암막 커튼을 설치했다. 커튼을 젖히지 않는 한 거실은 낮에도 호텔 방처럼 어둠에 잠겼다. 태경 씨는 이 집에서 겨우 이틀을 보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무언가를 안심하고 떠났지만 같은 이유로 나는 무언가가 불안했다. 혼자 살 때는 몰랐다. 막상 함께하기로 한 뒤에 혼자 남겨지고 나니 그의 공백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태경 씨는 내가 잠들기 전 외롭지 않도록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에 맞춰 전화를 걸어왔다. 뉴욕은 아침이었지만, 그는 매일같이 내 밤을 채워주려 애썼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그날도 잠을 설치다시피 한 끝에 겨우 눈을 붙였다. 새벽 다섯 시쯤 귀 가까이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태경 씨인가 싶어 반사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었지만 핸드폰은 잡히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사이에도 진동은 신경질적이면서 끈질기게 이어졌다. 받아야 했다. 태경 씨가 아니더라도 이 시간에 걸려 오는 전화라면 급한 일일 터였다. 그리고 급한 일은 대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한때, 새벽 전화는 곧 부음 소식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연아, 아버지가 숨을 안 쉰다. 가신 거 같다.”

잠결에도 내게 지금 이런 전화를 걸어올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이 소리가 내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화단 쪽에 누가 전화를 떨어뜨렸을까. 윗 층에서 알람을 맞춰두고 깜빡 잊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완전히 깨어버렸다. 머리는 무거웠지만 어차피 나는 아침형 인간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나였다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스스로 눈을 떴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핸드폰 진동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섯 시 십 분. 어떤 날은 삼 분을 넘기지 않았고, 어떤 날은 이 분 만에 멈췄다. 소리만 듣고 있기에는 1분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누군가 잃어버린 거라면 진작 꺼졌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멈추는 시간도 늘 제각각이었다. 그때그때 누군가가 직접 끄고 있다는 뜻이었다. 삼 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올라가서 말하고 싶어졌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아침부터 찾아가는 건 실례일 것 같아 나는 저녁 무렵 윗 층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냥 무턱대고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아 떡을 돌리기로 했다. 빌라에는 우리 집을 포함해 여섯 가구가 살고 있었다. 나는 집 앞 이름있는 떡집에서 흑임자 인절미 다섯 팩을 샀다. 이런 건 나보다 태경 씨가 훨씬 잘하는데, 혼자 인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이사 온 여자가 괜히 까탈스럽게 보이는 건 더 싫었다.


저녁 8시, 나는 떡 두 팩을 들고 3층부터 올라갔다. 302호는 사람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301호는 몇 번을 눌러서야 겨우 문이 열렸다. 칠십 대 초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문고리만 움켜쥔 채, 귀찮은 듯 물었다. 무릎까지 오는 자주색 바지에 회색 반팔 티셔츠, 그 위로 노란 조끼를 걸친 차림이었다.

“뭐요?”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이사 온 101호입니다. 떡 좀 드리려고요.”

“떡? 나는 단 거 안 먹어요.”

“아, 이건 그렇게 달지 않고요. 이사 와서 인사드리려고...”

“괜찮아요. 안 먹어도 됩니다. 나는 그런 거 안 받아요.”

할아버지는 말을 끝내자마자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었다. 잡상인도 아니고, 뇌물도 아니고, 이웃끼리 이사 떡을 드린다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손 무안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태경 씨가 같이 있었더라면 할아버지도 떡을 받았을까. 이상한 할아버지라고 여기기에는 뭔가 더 이상했다. 그런 거는 어떤 거를 말하는 걸까.

나는 2층으로 내려갔다. 내 침대와 똑같은 위치에 침대가 있을 것 같은 201호. 초인종을 누르자, 이번에는 금방 문이 열렸다. 사십 대 일 것 같은데 삼십 대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이사 온 101호입니다. 떡 좀 드리려고요.”

“아, 네. 맛있는 떡이네요. 감사합니다. 요즘은 이런 거 잘 안 하는데...”

“별거 아니에요. 그 보다... 혹시, 새벽 5시에 알람 같은 거 울리시나요?”

나는 이 남자도 빨리 문을 닫아 버릴까 봐 얼른 본론을 꺼냈다.

“아, 그게 거기까지 들리나요?”

“네,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같아서요.”

“저희 집은 아닙니다. 사실 저도 먼저 내려가서 여쭤보려 했어요. 101호도 아니면, 윗층 이겠네요. 301호, 할아버지 댁일 거예요.”

“아... 그럼, 엄청 크게 들리시겠어요.”

“그렇죠. 그 할아버지가 최근에 보청기 하셨거든요. 그래서 진동으로 알람을 맞춰 놓은 모양이네요. 저도 참... 미치겠습니다. 뭐, 할 수 없죠. 하여튼, 떡은 잘 먹을게요.”

나는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불쾌한 기분이 계속 이어지는 걸 느꼈다. 도대체 이 빌라는 어떻게 지었길래 3층에서 울리는 진동이 1층까지 내려온단 말인가. 할아버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알람을 울리겠다는 건가. 그런데 ‘할 수 없다’니 도대체 뭘 할 수 없다는 건가. 할아버지가 떡을 받지 않은 것도 기분이 상했지만 '할 수 없다'는 201호의 말이 더 불쾌했다. 그 말은, 우리는 어쩔 수 없고, 할아버지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뜻처럼 들렸다. 떡을 들고 남은 집들을 돌아 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 몫을 포함한 네 개의 떡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냉동실에 떡을 넣고,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다시는 다른 집 초인종을 누를 자신이 없었다.


돌리지도 못한 떡을 들고 온 게 힘들었던 걸까. 나는 소파에 등을 댄 채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짧았지만 꿈도 꾸지 않고 깊게 빠져든 것 같았다. 열 시에 태경 씨 전화를 받으면 떡을 거절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식탁 밑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기어 나오는 걸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멈췄다. 길고 가느다란 두 개의 더듬이가 좌우로 미세하게 떨렸다. 공기 중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몸은 귀뚜라미처럼 두툼했지만 몸통 아래로 지네처럼 가늘고 많은 다리들이 퍽이나 비현실적이었다. 5센티는 족히 넘어 보였는데 내 손바닥의 반만큼은 되는 크기였다. 결론은 바퀴벌레였다. 적어도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들 가운데 가장 크고 끈질겨 보이는 바퀴벌레. 어떻게 죽여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죽일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휴지나 도구를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것이 알아서 돌아가 주길 바랐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치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바퀴벌레는 식탁 옆 벽 틈으로 사라졌다. 301호의 알람 소리가 싫어 소파에서 계속 자볼까 했는데 사라진 바퀴벌레가 또 언제 나올지 몰라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레가 나오나 싶어 짜증이 났다. 내가 이 집으로 결정한 건 무엇보다 다시 인테리어를 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비어 있는 집에서 나는 약간의 화학약품 냄새, 화장실에서 나는 락스 냄새 그것들이 좋았다. 싱크대와 화장실, 붙박이 장 모두 화이트 톤이라 더욱 새것처럼 보였다. 이사 올 때부터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에는 동그란 구멍이 있었는데 거기를 통해 벌레들이 나오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배관이나 보일러, 전기 콘센트, 확장한 벽 틈 같은 것들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리모델링 되지 않았겠지? 나는 식탁 옆 바퀴벌레가 사라진 틈을 바라보다가 커튼을 한 번 더 단단히 쳤다.


이틀 뒤엔 현관 앞에서 또 나왔다. 운동화를 꺼내려고 신발장 문을 열었는데 윗 쪽에서 검은 것이 툭 떨어져 발등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고 슬리퍼를 벗어 타일 바닥을 내리쳤다. 헛짚었다. 어느새 진한 브라운 톤의 타일 위로 5센티 바퀴벌레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태경 씨를 만나기 전에도 십여 년을 혼자 살았는데 갑자기 혼자 사는 여자가 된 느낌이었다. 집을 나갈 수도, 계속해서 있을 수도 없게 된 심정으로 결국 방역업체에 전화를 했다. 세스코 직원은 젊은 남자였다. 진한 군청색 유니폼을 입고, 손에 작은 기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식탁 밑과 신발장, 그리고 싱크대 걸레받이 구멍을 보여주며 바퀴벌레가 나온 상황을 설명했다. 세스코 직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용도실 쪽을 둘러보더니 툭 하고 물었다.

“여기, 새벽에는 바퀴벌레 안 나와요?”

나는 바퀴벌레가 나온 시간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그를 쳐다봤다. 직원은 벽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을 이었다.

“곤충들은 진동에 민감하거든요. 특히 바퀴벌레 같은 애들은 바닥이나 벽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진동에도 바로 반응해요.”

그는 한 번 더 손바닥으로 벽을 두드렸다.

“진동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도망갑니다. 살아남으려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핸드폰 진동을 일부러 계속 울려서 바퀴벌레를 쫓아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바닥에 핸드폰 놓고 알람 맞춰두거나, 일부러 벽 쪽에 붙여놓고 켜두는 식으로요.”

일부러 벽 쪽에 켜둔다는 마지막 말에 나는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직원은 방 안을 둘러보더니, 싱크대 쪽 바닥을 스프레이로 가볍게 뿌렸다.

“예전에도 여기 방역 들어왔을 때, 새벽 다섯 시 지나면 화단 쪽이나 정화조 부근에서 많이 움직였거든요.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시면 저희가 죽은 바퀴벌레를 처리도 해드리구요.”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매일 새벽 다섯 시마다 들려오는 진동 소리. 그건 나를 깨우기 위한 게 아니라, 이 집 어딘가를 깨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301호의 배관을 통해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아래층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어? 캐리어가 많으시네요. 여행을 많이 다니시나봐요.”

세스코 직원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 남편이 미국 출장을 자주 가요.”

나는 누가 어디를 가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불필요한 답을 한 것 같아 바로 후회했다. 나도 모르게 그거 제 캐리어가 아니어요, 라고 말할 뻔 했다.

“요즘 바퀴벌레요, 해외여행 다녀온 짐에서도 타고 들어오는 경우 많아요. 캐리어 바퀴 있잖아요. 바퀴에 알이 묻어오기도 하거든요. 특히 미국 쪽은 오 센티가 넘어요. 잘 죽지도 않아서 골칩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서재 방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 바닥에, 검은색 캐리어의 네 바퀴가 조용히 붙어 있었다. 그 바퀴를 따라 지퍼 틈이 눈에 들어왔다. 단단히 닫힌 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지퍼. 나는 문득, 그 틈 사이로 무엇이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크고 묵직해 보이던 그 가방은 마치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특별한 생물 같았다. 나는 캐리어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태경 씨는 저 캐리어를 데리고 몇 번이나 미국을 다녀온 것일까. 아니, 저 캐리어와 함께 돌아온 건 정말 태경 씨 혼자였을까.


< 2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