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한 할아버지 >
나는 그날 저녁, 며칠 전 화장실에서 찍어둔 바퀴벌레 사진을 빌라 주민 단톡방에 올렸다. 공동 방역을 하면 비용도 나눌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위생 관리를 위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누군가는 이미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어떤 날은 바퀴벌레가 분명 약을 먹고 느리게 이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 아래, 나는 짧게 글을 덧붙였다.
“얼마 전에 이사 온 101호입니다. 최근에 바퀴벌레가 자주 보여서요. 혹시 다른 집도 비슷한 상황이시면, 이번에 함께 방역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공동으로 하면 비용도 줄고, 효과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모두 읽어서 숫자는 사라졌지만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후, 202호가 조심스럽게 톡을 올렸다.
“벌레가 주로 다용도실 쪽에서 기어 나오죠? 101호시면 정화조랑 가까워서 자주 출몰하실 거예요.”
톡 방 안이 잠깐 싸늘해졌다. 그리고 곧, 201호가 덧붙였다. 뭐, 할 수 없죠라고 말하던 유일하게 떡을 받은 사람.
“아무래도 이런 건 각자 위생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죠 ㅎㅎ. 공동 방역까지는 좀 과한 것 같아요. 한 달 만하고 그만두기도 그렇고, 방역업체가 날짜를 잡으면 다들 일정 맞추기도 어렵고요.”
‘ㅎㅎ’ 웃음 표시가 부드럽게 넘어가자는 신호처럼 보였다. 201호가 이어서 철쭉꽃 사진을 올렸다. 공동 화단 옆 돌담을 따라 흐드러진 흰색, 분홍색의 꽃들이 화려해 보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꽃 사진에 하트 이모티콘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
“올해는 유난히 진하게 폈네요 :)”
침묵을 지키고 있던 302호가 한마디 했다.
“진짜요. 우리 빌라가 화단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201호가 빠르게 화답했다. 기다렸다는 듯 부연 설명도 했다.
“아무래도 301호 할아버지 덕분인 것 같아요 ㅎㅎ, 항상 아침마다 물 주시고, 가지치기도 직접 하시던데요.”
“맞아요. 여기 화단 이렇게 관리되는 거, 다 할아버지 덕분이죠.”
202호가 마무리하고 화단 이야기는 빠르게 정리 됬다.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공동 방역을 제안했던 톡은 이미 대화창 저 위로 올라가 있었다. 누구도 다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마치 이 빌라에는 아무 벌레도 없다는 것처럼. 아니 벌레보다는 꽃이 더 많다는 것처럼.
태경 씨가 돌아오려면 아직 3주가 더 남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진동 알람에 맞춰 바퀴벌레와 함께 하루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이상하게도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기왕 일찍 일어난 김에 다이어트도 할 겸 새벽 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바깥 공기를 쐬고 돌아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마주친 건 301호 할아버지였다. 그는 빌라 분리수거장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노란 조끼에 자주색 바지, 떡을 돌리러 갔을 때 봤던 그 옷 그대로였다. 양손에는 비닐장갑, 한쪽 손엔 커다란 집게를 쥔 채 쓰레기봉투에서 쓰레기를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인사를 건넬까 말까 망설였다. 그 순간, 그는 나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봉투를 더 샅샅이 뒤적였다. 내가 못 볼 장면을 본 것도 아닌데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잽싸게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틀 후 저녁, 톡방에 뜬금없이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302호였다. 사진을 확대하자 ‘혼합 배출에 따른 수거거부 안내’라고 적힌 쓰레기 봉투였다.
“안녕하세요. 302호입니다. 누가 귤껍질을 봉투에 넣은 모양인데, 일반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같이 담겨 있다고 구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인정을 하면 벌금을 깍아 준다네요. 처음이라 10만 원이지 두번째는 20만 원, 30만 원 이렇게 늘어난답니다. 다들 벌금 내시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봉투를 잘 버렸는데 빌라주민 혹은 다른 누군가가 음식물 쓰레기를 넣었단 말인가? 벌금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다들 주의를 부탁드린다는 말은 이 빌라의 다섯 가구 입주자를 잠재적 범인으로 포함시켰다는 의미 아닌가? 정중하면서도 단정적인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모두 읽었는데 아무도 답을 달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호가 또 끼어들었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들이 있어서 신고를 하면 포상금을 준다니까 다들 쓰레기 더 철저히 분리하시고, 저녁 8시 이후에 내놓는 게 좋겠어요.”
그 말은 302호의 혐의를 슬쩍 제 3자로 돌리는 방식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넣었을 리는 없고, 외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결국엔 너나 잘하라는 말로 또 교묘하게 정리한 것이다. 201호는 내가 바퀴벌레 공동방역을 제안했을 때도 각자 위생관리의 문제로 결론을 내던 사람이었다.
“맞아요, 동네 돌아 다니다 보면 왜 노란 조끼 입고 녹색 모자 쓰신 어르신들 있잖아요. 요즘은 어르신들이 재활용 쓰레기도 잽싸게 가져가세요.”
늘 맞장구를 치던 202호였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파파라치라는 뜻인지 애매하게 들렸다. 박스나 종이 쓰레기를 빨리 가져가는 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왜 맞아요 라고 하지?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무언가 분명하게 대화가 오가는 건 아니었다. 302호는 빌라 내 다른 입주자를 의심했고, 201호는 파파라치를 조심하라고 했고, 202호는 쓰레기를 가져가는 어르신들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며칠 전 새벽, 노란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뒤지고 있던 301호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그 봉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고도 그가 했을 것이다.
비가 흩뿌리던 날이었다. 귀찮아도 새벽 운동을 다녀오는데 우리 집과 102호 사이에 커다란 택배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분명 나갈 때는 없었다. 그런데 상자는 비에 젖은 흔적도 없었고, 송장도 떨어져 있었고, 윗부분은 이미 누군가가 한 번 개봉한 듯 벌어져 있었다. 하필 그때, 102호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발끝에 닿은 상자를 내려다보며 잠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가 가져가겠지’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곧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102호입니다.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가 제 물건이 아니네요. 송장도 없고, 안에는 성인용 기저귀가 들어 있어요... 혹시 받으실 분이 실수로 놓고 가신 건가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20분쯤 뒤, 다시 글이 올라왔다.
“택배 회사에 반품하려 했더니 송장이 없어 접수가 안 된다고 하네요. 새것이고, 또 너무 커서 버릴 수도 없고, 어쩌죠...”
주인이 있다면 가져갈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반품을 하겠다는 심리는 또 무엇일까. 102호 여자는 상자가 무슨 위험물이나 되는 듯 어서 치우고 싶어 했다. 마침내 각자 도생의 201호가 톡을 남겼다.
“헉... 그건 좀 민망하겠어요;; 저희 집은 아니에요.”
“202도 아닙니다~”
“302 아닙니다 ㅎㅎ”
모두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건 예상된 반응이었지만 참 빨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마지막 문장에서 멈칫했다. 302호의 ‘ㅎㅎ’.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웃음 표시인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정말 이 빌라 내에 주인이 없는 것이라면 굳이 웃거나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데 괜히 어색해서 덧붙인 것처럼 보였다. 누가 의심한 것도 아닌데 혼자 아닌 척에 힘을 쓴 느낌, 아니면 자신은 누가 주인인지 알고 있는 느낌. 나는 그 상자가 301호 할아버지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01호인 내가 주문한 건 아니고 나머지는 다 아니라고 했으니 결국 남은 건 301호. 무엇보다 그 상자 안의 물건, 성인용 기저귀를 빌라 안에서 쓸 만한 유일한 연령대의 사람. 그러나 301호 할아버지는 단톡방에 아예 반응이 없었다. 늘 그렇듯 톡엔 침묵하고, 누구의 것인지 묻는 순간에도 말이 없었다.
주인 없는 기저귀 택배 상자는 이틀이나 더 자리를 차지하다가 3일째 되는 날 사라졌다. 그동안 102호 여자는 그 상자를 교묘하게 101호 쪽으로 더 밀어 우리 집 현관 앞에 도착한 택배로 보이게 위치를 조정했다. 그리고 그 상자가 사라진 날 밤 단톡방에 102호 여자의 글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있었던 택배 상자 건 관련해서요... 결국 끝내 누가 가져갔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외부에서 들락날락 할 수도 있고....혹시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입구 쪽에 CCTV라도 설치하면 어떨까 싶어요. 공동현관이랑, 분리 수거함 쪽 방향만 비추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다들 괜찮으시면 저희가 알아볼게요.”
침묵은 길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네요.”
“택배도 그렇고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거 방지에도 도움 될 듯요.”
“302도 찬성합니다~!”
늘 그렇듯 201호, 202호, 302호 순이었다. 나까지 합쳐 순식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이 부분에선 누구 하나 ‘굳이요?’ 하는 사람이 없었다. 301호 할아버지는 좋다 싫다 한마디 안했는데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 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