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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_3

< 카메라가 닿지 못한 >

by 한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안방으로 향했다. 무언가라도 내가 맞았다는 증거를 찾고 싶었다. 그런 게 없다면, 나를 달래주는 무언가 하나쯤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그 방에 있던 오래된 장롱과 몇몇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방문을 열었을 때 장롱이 거기 있으면 엄마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장롱 안의 이불이며 옷가지들은 다 정리했지만 딱 하나, 도저히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건 엄마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던 분홍색 네모난 소쿠리였다. 플라스틱 바닥은 군데군데 색이 바래 있었고, 모서리엔 깨질 듯 말 듯 한 실금이 가 있었다. 소쿠리 안에는 천 조각, 남은 단추들, 감긴 채 굳어버린 실타래, 바늘과 골무가 든 작은 통 같은 것들이 정갈하게 들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소쿠리를 꺼내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뚜껑은 아주 쉽게 열렸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속이 울렁였다. 천 조각들 밑바닥에서 상품권 봉투 하나가 나왔다. 안에는 몇 장의 종이가 접힌 채 들어 있었다. 펼쳐보자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글씨였다. 단정하진 않지만 집중해서 눌러쓴 흔적이 역력한, 약간 기울어진 글씨체.

‘신세계백화점 5층 유가네’
‘식당 예약 02-XXX-XXXX’

그리고 그 아래 마트 영수증 뒷면에 적힌 한 줄의 메모.

‘고모 백만 원 윤재 접수’

그 밑에는 또 다른 메모가 이어졌다.

‘소고기, 풋고추, 느타리버섯’

그 모든 걸 내려다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이게 다였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겨진 것이 전부였다. 중요한 듯, 아무 의미 없는 듯. 그리고 소쿠리 안에서 또 하나의 물건이 나왔다. 낡은 비디오테이프였다. 흰색 라벨지 위에 또박또박 정자로 적힌 글씨.

‘은하 결혼식 1998’

나는 그것을 손에 들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테이프의 무게보다 더 묵직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모 백만 원 윤재 접수. 나는 그 짧은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분명 그날 형부가 봉투를 가슴에 넣는 걸 봤다고 말했었다.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가족을 등졌고, 고모를 피했고, 결국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도 화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지금, 엄마의 손글씨로 남겨진 이 메모 속 이름은 ‘윤재’였다.

봉투를 받은 사람은 형부가 아니라 윤재 오빠였다는 뜻일까? 그게 정말, 사라졌다고 믿었던 그 봉투였단 말인가. 고모가 백만 원을 윤재 오빠에게 접수할 일이 결혼식 말고 무엇이 있나? 아버지 장례식 땐 윤재 오빠가 앉지 않았다. 그럼 윤재 오빠가 봉투를 받아서 어딘가 올려두었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가 잘못 보신 건 아닐까. 윤재 오빠가 접수를 하고 형부에게 건넸단 말인가? 그때 분명, 형부와 윤재 오빠는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는 왜 이 메모를 남기셨을까. 엄마는 원래 메모를 자주 하시긴 했다. 두부 값, 세제 할인 행사, 식당 전화번호 같은 걸 영수증이나 아버지 약 봉투 뒷면에 습관처럼 끄적이던 분. 하지만 그런 엄마가 결혼식 부조에 대해 따로 장부를 만든 적도, 정리하려고 나를 부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한 줄만 남겼을까. 백 명이 넘게 다녀간 그날, 왜 유독 고모의 봉투만, 그리고 윤재의 이름만 기록하셨을까.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던 걸까. 그런데 정황상 결혼식 날 적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면, 아버지의 말과는 다른 진실을 이미, 아니면 나중에라도 알게 되셨던 걸까. 또는 단순히, 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축의금으로는 꽤 컸기에 기억해 두려 하신 건 아닐까.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적어두고, 속으로 오래오래 담아두려 했던 것처럼.

엄마가 이 메모를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엄마는 머릿속에서 장면을 하나하나 되짚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트 영수증 뒷면에 마치 장을 보듯 무심하게, 이 한 줄을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한 줄이 아버지의 기억보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두려워졌다. 만약 윤재 오빠가 정말 봉투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면, 나는 지난 20년간 도대체 누구를 원망하며 살아온 걸까. 그리고 내가 얻은 건 또 무엇이었단 말인가. 윤재 오빠가 소리소문 없이 멀어진 이유가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큰 오해 속에서 살아온 걸까. 장례식장에서 그들의 불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건 얼마나 큰 오만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 자슥은 정종을 사 들고 집에 찾아왔단 말이제. 지가 관리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큰 절을 하고 갔다 아이가. 그란데 그놈의 자슥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그라믄 누가 했겠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말은 분명 윤재 오빠는 봉투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집에 다녀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본인이 가져갔다고 실토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 윤재 오빠가 범인이 아니었다면,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버지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상,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느껴 사과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을 테다. 반대로, 오빠가 정말 범인이었다면 상상하긴 싫지만, 오히려 얼굴을 보여드리고 정중히 사죄의 인사를 남김으로써, 자신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려 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지금도 그 일의 순서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버지의 말, 윤재 오빠의 방문, 엄마의 메모. 지금은 아무리 맞추려 해도 나열할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이제 와서 그 백만 원이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는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만 원을 건넬 때 그 누구라도 봉투를 꺼내 들며 내 이름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모든 사람들이 나 같은 마음으로 봉투를 건넬 것이다. 그러므로 봉투를 가져간 사람은 봉투를 건넨 사람의 이름과 마음까지 빼앗아간 셈이었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작은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보란 듯이 지불한 내 백만 원으로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그것이 중요했다.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의 모든 장례식장에 조금은 더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들어설 수 있을 테니까.


봉투를 건넨 사람, 고모만이 유일한 증인이었다. 하지만 팔순을 넘긴 고모에게 ‘27년 전, 누구에게 봉투를 건넸는지 기억하시냐’고 물었을 때, 과연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최소한의 기억을 되살릴만한 단서가 필요했다. 영상이라도 보여드리면, 어쩌면…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

‘은하 결혼식 1998’, 그날의 장면이 고스란히 이 안에 담겨 있다면,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결혼식의 풍경을 결혼식 이후 단 한 번도 돌려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존재조차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와서 다시 보려 해도 그걸 재생할 기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스마트폰 속 스트리밍 영상으로 옮겨가 버렸다. 물론, 새로운 매체가 언제나 이전 매체보다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디오테이프는 묘하게도 무게감이 있었다. 제법 묵직한 플라스틱 케이스, 그리고 플레이어에 들어갈 때 철커덕하고 테이프가 걸리는 그 느낌. 그건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다. 영상이 하나의 ‘물건’처럼 존재하던 시절. 소프트웨어가 아닌, 분명한 물질로서의 기억. 지금의 영상은 너무 쉽게 찍히고, 아무렇지 않게 공유되고, 무서울 만큼 간단히 삭제된다. 그래서 지워지지 않는 감정은 오히려 그 오래된 테이프 속에서 흐릿한 화면과 함께 눌어붙은 채 지금까지 살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결국 인터넷을 검색해 ‘VHS 영상 디지털 변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업체를 찾았다. 테이프를 조심스레 봉투에 넣고, 짧은 메모 한 장을 함께 동봉했다. 이 테이프가 분실된다면 나에게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는 사라진다는 심정이었다.

“테이프 안의 내용을 영상 파일로 변환해 주세요. 화면이 흐려도 절대 편집하지 마시고 원본 그대로 부탁드립니다.”

택배 상자를 붙이고 돌아오는데 나는 마치 무슨 비밀 업무라도 수행한 사람처럼 가슴이 잔잔히 떨려왔다. 이상했다. 그 안에 진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정작 그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에게 없는 건 아닐까.

며칠 후 맡겨두었던 비디오테이프가 디지털 파일로 변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람을 통해 메일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VHS 디지털 변환 완료. 다운로드 링크 첨부”

나는 파일을 내려받고, 마우스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영상 제목은 그대로였다.
‘은하 결혼식 1998’
마치 오래된 비디오 가게 선반 어딘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B급 영화 제목 같았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깜박이며 열렸다. 처음 몇 초간은 화면이 지지직거렸다. 그러다가 옛날 TV처럼 제목이 흰색으로 나타났다가 결혼식장 내부의 모습이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배경음처럼 깔리는 카메라 너머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들. 주로 하객들의 뒷모습이 많았고, 신부 대기실에 앉아서 결혼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 젊은 날의 얼굴도 보였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라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하며 웃고 계시던 아버지도 보였다. 아버지는 그날 자신의 두 다리로 허리를 펴고 몇 시간이나 서 계셨는데 죽을힘을 다해 웃었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도 낯설었다.

화면은 꽤 분주하게 흘러가고 누군가의 어깨너머로 식장 입구 쪽 풍경이 어렴풋이 잡혔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고모가 등장했다. 단정한 감색 정장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고모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객들 사이를 지나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카메라는 미묘하게 방향을 틀었고, 그 순간 윤재 오빠가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스쳐 지나갔다. 고모는 바로 윤재 오빠 앞에서 잠깐 멈춰 선 듯 보였다. 화면은 특정 인물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타깃 없이 그저 식장의 전체 풍경을 그리는 듯 다소 흔들렸고, 두 사람의 손 위치는 테이블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죽였다. 봉투를 주고받는 장면은 카메라가 닿지 못한 그 짧은 앵글의 사각에 숨어 있었다. 고모는 곧장 몸을 돌려 어디론가 바삐 향했고, 윤재 오빠는 자리에 앉아 자신의 양복 윗주머니를 한 번 슬쩍 손으로 눌렀다. 그 동작은 너무도 짧고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놓쳐버릴 만큼 자연스러웠다. 사촌형부 최만수 씨는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되돌려 보았다. 다시 봐도 고모가 봉투를 건넸는지, 오빠가 받은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모가 멈춰 섰던 그 짧은 시간, 몸의 각도, 오빠의 주머니를 더듬는 손짓…그 모든 것이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봉투를 가슴에 넣은 사람은 형부가 아니었다. 엄마는 혹시 이 비디오를 보고 메모를 적으신 걸까. ‘고모 백만 원 윤재 접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은 그 오래된 메모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마지막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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