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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Dora Oct 22. 2022

월 천만 원, 연 일 억, 경제적 자유

퇴직 후 자아 탐색 

사람 앞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날


정작 공무원으로 일할 때 나는 돈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물론 공무원이라고 다 나같은 건 아니다. 입사 동기들 중에도 주식을 하거나 소소하게 부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연금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노후를 위해 투자를 해야하나 생각했다.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딱 맞게도(우습게도 현직 공무원일 때 나는 사람 앞일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에도 공감하지 못했지만), 나는 공무원을 그만 뒀다(눈물 날 정도로 우스운 아이러니다). 노후에 공무원 연금 받을 거 믿고 제일 흥청망청 살았던 욜로족 넘버원이었던 내가 말이다.



모아놓은 돈 0원. 빚이나 없으면 다행인 상태로 막무가내 퇴직 후에야 마침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야 현실적인 감각이 생겨났다. 그동안 왜 돈을 모아놓지 못했는지 과거의 나를 탓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당장 돈을 모아야 했다. 포탈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투자나 부업 관련된 영상들을 많이 찾아봐서 이제는 알고리즘에 부업과 투자, 돈 버는 이야기와 관련한 이야기들만 뜬다.


월 1000만원 벌고 느낀 점, 2년동안 1억 모으고 느낀 점, 몇 년만에 얼마 모으기, 가장 쉽게 얼마 버는 법, 집에서 얼마 버는 법 …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종류의 제목들의 영상이 쏟아져나온다. 몇 개 클릭해서 진지하게 봤다. 나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얼른 월 천 만원 달성하고 자면서도 돈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로 집에서 손쉽게 천만원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유튜브를 봤다. 이모티콘 팔아서 몇 년만에 수억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유튜브도 봤다. 그 자체로도 약간 허무함 같은 것이 밀려왔는데 더 허무해지는 건 그 영상이 이미 몇 년 전 영상들이란 것이었다. 


지금은 정말 늦었을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닥치는 대로 시작했다. 이모티콘을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 그러나 머리는 딱딱하게 굳고 손은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맘먹은 것처럼 쉽지 않아서 중간중간 멈춰서서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나. 흥청망청 돈을 쓰며 지금 당장 행복하게 노는 게 중요한 거라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면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았다. 7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며 안정성이라는 독 때문에 내가 망가졌다고 상황을 탓했다.


상황을 탓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 반전은 내가 안정성이라는 것을 믿고 노후를 대비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라는 것,

그리고 두번째 반전은 꼭 그들처럼 월 몇천 연 몇억을 벌 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


얼마전 대학 동기인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대학 동기는 딱 두 명 있는데 우리 셋 모두 대학 땐 다른 직업을 꿈꿨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셋 다 공무원이 돼 있었다. 일단 그 둘은 나보다 1,2년 늦게 입사했다. 맥주 한 잔씩 하며 지금까지 모은 돈이나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나보다 늦게 입사한 그들이 나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모았으며 투자도 똑똑하고 현명하게 잘 하고 있었더랬다. 


둘뿐 아니라 주위에 많은 동기나 현직들을 봐도 공무원이라서, 노후가 보장됐기 때문에, 안정적이기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고 편한 자기합리화였다.


난 그냥 못 모은 거였다. 그게 다다. 어쩔 수 없다. 과거에 내가 그렇게 산 것을 이제와서 탓한다고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게 후회된다면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살면 될 일이다(물론 어렵기야 하겠지만).


그리고 두번째 반전. 월 얼마, 몇 년에 얼마를 모아야만 하는 걸까? 그게 정말 행복하고 올바르고 모두가(특히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일까? 


물론 돈은 중요하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아플 때도 돈이 없으면 서럽다.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물론 돈은 필요하다. 그런데 꼭 그렇게 남들처럼, 남들만큼,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실 나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뭐라고 돈이 중요하다, 아니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내가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독선이고 무지이다. 누구에게나 처한 상황은 다르고 누구나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누군가는 돈을 쓰며 행복을 느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시간낭비, 현재의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는 꿈을 위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껴가며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을 것이다. 아마 아직도 내가  "그래도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있지" 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쟤 아직 배불렀네, 정신 못 차렸어"라고 비난할 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향이든지, 맘이 불편하지 않은 곳으로 가자.

공무원으로 별탈 없이 7년 일하고 그만둔 후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지향하는 삶, 그리고 나의 적성에 대해 탐구를 하다보니 세상 모든 사소한 것에도 오만 생각이 드는 나날이다. 어쩌면 10대, 20대에 끝냈어야 하는 고민을 지금에서야 하고 있는 게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뒤늦게 고민하며 잠 못 이루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속도, 숫자, 수치가 아닌 방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월 천만원을 벌게 되면 행복할까? 늘 하는 고민인데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답은 예도, 아니오도 될 수 있다. 무엇으로, 무엇을 희생하며 그 결과를 이뤄낼지에 따라서 답은 다를 것이다.


모두가 쫓아가는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다르다면 그 길을 따라서 묵묵히 걸어가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리고 답을 찾는 과정이 남들보다 늦게 시작될수도, 남들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는 거겠지. 오늘은 독이 되는 합리화가 아닌 선이 되는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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