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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Dora Oct 24. 2022

익숙한 일의 슬픔, 낯선 일의 기쁨

일의 슬픔만 알고 지내던 과거, 그리고 지금


나는 7년 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선관위에서의 업무는 자잘하게 여러가지로 나뉘었지만 일단 내 기준 두 그룹으로 나눠보자면 성과가 비교적 쉽게 눈에 보이는 일 / 그렇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나는 성과가 쉽게 판별되는 일이 좋았다.


또 다른 방식으로 나눠보자면 머리싸매고 앉아 복잡한 문서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 /  몸은 힘들지만 크게 복잡함 없이 하는 노동이 있었다. 나는 후자가 좋았다.


종합해보자면 나는 눈에 성과가 바로 보이는 단순 노동(늘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만은 않지만)을 선호했다. 그리고 경험상, 거의 그 두 가지는 짝처럼 붙어 다녔다.



나의 비극은 여기서 발생했다. 


나는 내 선호 지점과 대척점에 있는 일, 그러니까 복잡하고 당장 성과가 나지 않거나 성과가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이 ‘제대로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수긍할만한 이유는 없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아마도 회사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이 그런 쪽이어서, ‘승진이 잘 되는 주요 업무’가 그런 업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말로는 “난 승진엔 관심 없어”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나의 야망이야”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주류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자아도  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두 자아가 충돌해서 도무지 어떻게 컨셉을 잡고 가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것이 나의 비극이었다.


우왕좌왕하던 나는 계속 선호치 않는 일과 가치를 좇았다. 

선관위에서 좋아하지 않는 업무를 하며 불행해 하던 중, 환경을 바꾸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서 전출을 신청했다. 그래서 선관위에서 다른 중앙부처로 기관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다른 곳에 가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전출(사기업으로 따지면 이직)은 실패적이었다. 전출해서 간 중앙부처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순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일은 찾기 힘들었다. 일의 절차는 복잡하고 어려운데 도무지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기계에서 하나의 부품이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느꼈다. 도무지 왜 해야하는지 모를 일을 했다. 거기다 전 직장보다 더 수직적이고 숨막히는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음은 덤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일로 가득한 기관으로 옮기기까지 했다가 결국엔 공무원 자체를 그만 뒀다. 또 한번 다른 기관으로 옮기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깨달은 것은 그 어딜 가도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하며 충돌하는 자아 속에서 갈팡질팡했던 것은, 애초에 원치 않는 일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일이었기에 일에서 어떤 성과나 보상이나 효능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면 나는 인정욕구가 강하고, 일 속에서의 성장을 기대하고, 성취감을 느끼길 바랐던 것이었다. 그런데 또 일은 싫어서 나의 자아는 설 곳을 잃었던 거다.




지금 나는 서울 연남동의 한 칵테일 바에서 주방 보조로 주 3~6시간 정도 파트타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곧 부산의 칵테일바에서 주방 메인으로 일하게 될 예정이다.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는 것 정도밖에 안 해봤던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도 나는 엄청나게 감사하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요리를 덥석 해보겠다고 한 과거의 나에게도 고맙다. 


한 번도 안해봤다고, 난 요리에 소질이 없어서 안된다고 시도해보지도 않고 거절해버렸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전혀 새로운 뿌듯함과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일은 내가 좋아했던 일과 결이 같다. 몸은 힘들어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존재하고(음식),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손님들의 평, 주변 사람들의 평),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게의 운영, 사람들이 먹고싶어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가 선명하다.


요즘 나는 파스타 면을 예쁘게 말면서, 메론의 보트를 가지런히 따면서, 뇨끼를 타지 않게 고루고루 노르스름하게 구워내면서 처음으로 일을 배워가는 기쁨을 느끼는 중이다. 


일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라는 느낌을 느낀 것이 너무 오랜만의 일(혹은 처음)이다. 일에서 성장, 성취감, 뿌듯함 그리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니! 내게는 너무도 새롭고 신기한 감각이다. 


적성에 맞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감각을 느끼면서 일했던 걸까!?


업무에서 성취감이나 효용감을 느끼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필사적으로 직장 밖에서 성취감이나 기쁨, 효용감 같은 감정들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게 일을 하면서도 가능하다니… 그것도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내가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과거에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어쩌면 사람들이 높은 가치를 매겨주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일을 못 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엄청난 기회를 차버리는 짓이 아닐까?


물론 내가 운이 좋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하기도 했으나 애초에 운이 좋았던 것이다. 매번 이렇게 운이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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