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이라는 말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서울특별시민"으로 살 때는 몰랐다. 세상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서울 사람들은 지하철 1호선을 이야기할 때 당연하게도 ‘서울1호선’이 아니라 ‘1호선’이라고 말한다. 가끔씩 지하철이 존재하는 다른 광역시에 사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만 XX1호선(예:부산1호선) 이라고 말해야하는지 불만을 토로하곤 했지만 그것은 굉장히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의 광역시에 1,2호선 정도는 있으니 7,8,9호선 정도를 말 할 때는 당연히 그 라인은 서울밖에 없으니까 따로 서울7호선, 서울8호선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만 1호선이나 2호선을 말할 때는 ‘서울’을 붙여야 하는 것 아닐까, 부산시민이 된 입장으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심지어 부산엔 4호선에 동해선, 김해선까지 있다고)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거나 어딘가에 글을 올리거나 서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굳이 부산1호선,2호선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1호선, 2호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반대로 서울1호선, 서울2호선이라고 꼭꼭 붙여서 이야기한다. 서울특별시민으로 살 땐 몰랐던, 아니, 알았으나 굳이 알고싶지 않았던 그리고 체감하지 못했던 일이다. 역시 사람은 그 입장에 처해봐야 그 처지를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나는 이제 다시 서울에 돌아가서 서울시민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더욱 이런 맘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있다. 부산은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고 한다. 부산에는 10월에 내려왔고 그래봤자 지금 12월 중순이라 더 추워지려면 한참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부산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눈이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마지막으로 눈을 본 건 거의 10년 전이나 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눈 보러 서울 가고 싶다, 뭐 그런 수다를 떨곤 한다. 나는 눈을 별로 좋아하진 않아서 괜히 '눈 와봤자야, 질척이고 차 막히고 더러워지고 나중에 다 까매지고 미끄럽고 어쩌고 저쩌고'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이런말조차 약간 위선으로 들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진심으로 나는 부산이 눈이 안 와서 좋은걸. 눈은 그냥, 설산에서 보는 게 좋다. 매연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포근함과 순수함만 간직한 눈 말이다. 도시에 눈이 내리는 건 여러모로 별로다. 막히는 차, 매연으로 금새 새까매지는 눈, 질척질척함, 넘어짐, 미끄러움….
아무튼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영문을 모르게 갑자기 잘 쓰는 메신저 화면에 눈이 내릴 때가 있다. 서울에 계속 살고 있었더라면 아 당연히 오늘 눈이 내려서 이 메신저 어플에서도 눈이 내리는구나 싶어서 ‘아 센스있네’라고 생각했을텐데, 부산에 있는 나는 처음엔 눈내리는 화면을 보고 어리둥절하다가 곧 ‘아니 좀 위치기반으로 눈 내리는 지역에나 이렇게 하든가. 강원도에 첫눈 내릴때 서울에 눈 안 왔는데 그 때도 눈 내리는 화면 해줬나?’하는 울화(?)가 치미고야 마는 것이다. 뭐랄까 딱히 화가 났다기 보다는 그냥, 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내가 뭘 검색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기반으로 해서 득달같이 맞춤광고는 잘만 내면서 왜 눈내리는 화면같은 건 위치기반으로 못 하는 거지? 싶다.
서울 살 때는,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왜 다들 서울에만 사나 좀 흩어져서 살았으면 좋겠다!(나좀 편히 살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서울특별시민이 아니게 되니 나의 그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흔히들 부산을 ‘대한민국 (서울 다음)제2의 도시’라고 말하고 나도 부산시민이 된 입장에서 그러한 점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2개월밖에 안 살아놓고 이런 소리 하면 누군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서울에 비해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버스도 잘 다니고 지하철도 잘 돼있다. 병원도 많고 학원도 많고 대학병원도 있고 카페도, 맛집도, 백화점도.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기본적인 것들만 충족된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예를 들면 문화생활 부분의 측면에서. 부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대학교도 꽤 많아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사는데 콘서트나 페스티벌같은 것, 유명한 전시회같은 것들은 정말 드물다. 심지어는 자라나 H&M같은 SPA브랜드에 가도 부산에서 가장 큰 지점에 가도 서울의 고만고만한 지점보다 옷의 가짓수가 현저하게 적다. 제2의 도시인 부산시민마저도 이런저런 불편함을 갖고 사는데, 다른 지역에 사는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면서도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시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같은…2차병원은커녕 1차병원도 찾기 힘든 동네도 있다.
언니가 제주도에 집을 장만해서 이사를 준비 중이고 나도 그 집에서 몇 번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작년 10월에 황금연휴를 활용해서 연차 몇 개 붙여서 10일정도 제주 집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놀고, 카페도 다니고, 친구들과 뒷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재밌게 놀다가 어이없게 샤워하다가 발을 삐끗해서 발목 쪽이 퉁퉁 부은 거다. 아무리 찾아봐도 정형외과가 근처에 없었다. 일단 응급처치는 해야하니 그냥 약국 가서 소염제를 달라고 했더니 약사가 이거 냅두면 큰일난다고 시내에 있는 병원에 당장 가라고 했다. 그래서 40분을 운전해서(다행히 왼쪽 발이었다) 시내 병원으로 갔는데 웬걸, 내가 갔던 요일은 오후 1시까지만 진료랬다. 안 알아보고 온 나도 잘못이지만, 40분을 달려온 시내의 정형외과인데…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근처에 다른 정형외과는 없었다. 찾기도 지쳤다. 아무리 젊은 이들의 유입이 많은 곳이어도, 중장년층 인구가 많은 농어촌지역인데 이렇게 병원 접근성이 떨어져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하여튼 중요한 건 균형발전이라 이 말?
이제와서야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절절이 와닿는다는 뭐 그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