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시간에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름휴가를 한 달 정도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분의 말이다. 돌아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시차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아침마다 일터에 나오기 싫어서 스스로 코뚜레를 하고 나온다고 덧붙였다. “여행경비로 많이 지출했으니……” 말을 하면서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런 표정이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스스로 역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라도 자신을 표현하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일하는 자신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문득, 나는 일을 하면서 일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던가 골똘해진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조퇴한 기억이 있다. 애인은 저녁에 일했던가? 낮밖에 시간이 없었나 보다. 그때 애인의 요구는 조퇴 한번 나를 위해 못 해주나, 였다. 책임감이 강해 까닭 없이 조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일은 언제나 먼저였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고 박완서 씨가 아들을 잃고 헤어 나오지 못했던 마음을 서서히 글을 쓰면서 극복했다는 글을 보았다. 작가에게 글쓰기란 일이라서 일은 고단하고 지루하지만, 일상을 견디게 해 준다는 말이었던 듯하다. 일하기 싫어하지만, 일이 없으면 답답해질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요즘은 일하기가 버겁다. 하기 싫다기보다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갈등이 생긴 탓이다.
서른 초반에 전문직을 갖게 된 내게 일은 존재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일하면서 어떤 성취와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일거리를 집에서 풀었던 내가 더 이상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 까닭은 아이 덕분이다. 가져가도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예전처럼 집에 가서 하자, 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은 일터에서! 하고 생각한다. 나와 일 사이에 가족 그리고 관계가 있네, 끄덕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