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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i Oct 19. 2022

내 목소리가 이럴 리 없어

자기 노래 스스로 들어보다가 문득


요즘 퇴근 후 소소한 일상이 더해졌습니다. 


'혼코노', 혼자 코인노래방을 가는 것입니다. 저희 동네에 있는 코인노래방은 천 원에 4곡이 제공되어서 혼자 가볍게 즐기고 오기에 좋습니다. 조금 아쉽다 싶으면 500원 동전을 넣어 2곡을 추가합니다. 


저는 제가 노래를 참 못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노래방을 좋아합니다. 노래는 엉망이지만, 느낌만큼은 베테랑 가수인 양 허세가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매일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노래를 부르려니 조금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핸드폰을 꺼내서 제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제가 제 노래를 녹음하여 들어본 것은 처음입니다. 노래가 엉망인 것은 알기에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의외로 괜찮을지도?'하는 설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은 저의 노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음정이나 기술적인 측면이야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뭣보다도 '음색'이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제 노래를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서 듣는 것은 다름 아닌 저의 귀입니다. 제 귀는 제 발성이 몸속에서부터 성대를 타고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모두 듣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제가 라이브로 들은 제 노래의 음색이 정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온 지구에서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이 듣는 사람은 오직 저 한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 수십억 명 중에서 오직 저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녹음해서 들은 제 노래의 음색이야말로 '모두가 그렇게 듣는', 보편성을 가지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음색만 그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내뱉는 말과 행동도 그렇습니다. 제 말과 행동의 의미를 세상에서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야말로 저 자신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일 것인데, 때로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저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흔히 이런 것을 '오해'라고 부릅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오해를 샀네..." 이런 일을 저만 겪은 것은 아닐 겁니다. 


제 노래의 음색과 마찬가지로, 제 말과 행동의 의미에 대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은 저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우리의 노래에 관하여는 타인의 귀에 기준을 두지만, 우리 말과 행동의 의미에 관하여는 기준을 양보하지 않으려 합니다. 때로는 자기중심적이라고 불릴 만큼 말입니다. 


"왜 내 뜻을 몰라줘? 섭섭해."


한편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타인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해석'에 오히려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해석도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사실과, 때로는 타인의 해석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의도한 게 그거였나봐."


노래는 분명 타인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부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하여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혼코노'란 말이 생겼겠습니까. 


말과 행동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과 행동은 대개 타인을 향합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어떻게 수용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타인만을 위하여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내지르고 싶은 대로 질러버리기도 합니다. 


'주관'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합니다. 스스로 주관이 부족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너무 애쓴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타인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위안도 해봅니다. 


결국은 밸런스인가 봅니다. 노래는 제멋으로 부르는 게 맞지만, 기왕이면 남들도 듣기 좋은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노래도 갈고닦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경험이 필요합니다. 두성도 써 보고, 가성도 써 보고, 삑사리도 내다보면 언젠가는 노래가 늘지 않겠습니까. 남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보고, 욕먹고 철판도 깔다 보면 차츰 제 말과 제 행동으로 억울할 일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내일도 모레도 경험을 할 것입니다. 노래방도 갈 것이고, 타인과 대화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경험치를 쌓아가는 저는 늘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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