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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 다이브 Dec 05. 2023

언제나 영화처럼

Humans of daiv. 아홉 번째 이야기: 김서진

인생이라는 긴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처럼 고요한 시간도, 가슴 뛰던 순간들도 모두 지나갈 뿐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순간들이 뜨겁게 녹아들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관점이 다르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장면을 떠올릴 것인가. 자신만의 영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김서진을 만났다.


올 한 해는 어땠나.

올해는 안정된 해였다. 작년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아직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고, 또 그것들로 주위를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로도 충분한 것 같다. 굳이 새로운 것을 삶에 들여놓고 싶지 않다. 지금 이대로가 참 좋다.



어떤 과정이 있었나.

사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통의 새내기처럼 술자리도 자주 나가고, 여러 모임을 가졌다. 당시에는 남들도 다 참여하니까 따라갔지만, 항상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하고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대2병이 왔다 (웃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종종 수업에 가지 않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사람 구경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이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책이나 영화를 보고 짧은 서평이나 평론을 남기는 게 너무 재밌어서 독서 동아리도 들어갔다. 요즘은 방황하던 시기에 글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 새로운 도전으로. 지금은 졸업 논문도 써야 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있어 망설여진다. 그때였으면 바로 할 수 있었을 거 같다. 책 중에서도 영화 평론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 사실 비밀 블로그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소개하고 싶은 책과 영화.

애프터썬이라는 영화를 소개해 주고 싶다. 부녀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위태로웠던 경험이 있었는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이 그렇게 멀지 않구나. 앞으로 주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떠나갈 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됐다.


책은 신형철 작가님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추천한다. 요즘 사랑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이성 간의 사랑도 좋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더 좋다. 책에 나오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의 속뜻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결여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에게서 사랑할 만한 것들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면 떠나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결여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어떤 면에서는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다. 영원하고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결여로부터 시작한 사랑이지 않을까.

연구실에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연세대학교 위성지구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면서 우리나라 남해 지역의 양식시설물들을 딥러닝 모델로 검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공위성 영상 수집 및 처리부터 딥러닝 모델까지 한 번에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이 주제로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했는데, 딥러닝 모델 성능이 좋아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졸업논문까지 마무리되면 연구 지역을 확대하고 계절 변동에 따른 양식시설물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는 방향으로 후속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어떤 연구를 추구하나.

낭만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제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여지는 많지만, 낭만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자연 과학이라는 학문에 가까운, 근원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 자연을 경외하는 입장으로서, 자연의 시스템 중 일부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을 연구해 보고 싶다.



요즘 고민되는 일은 없나.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한데, 너무 공학적인 마인드로 변해버렸다.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비교하면 인공지능을 정말 밀도 있게 공부했다. 대학원까지 생각할 정도였는데, 오히려 과학적인 사고에 방해가 되는 느낌이다. 지구과학이나 위성 영상은 주관적인 해석이 필수인데, 이 여백을 채우는 게 힘들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도구로써 사용해야 하는데, 당장 이거 적용하면 성능 좋겠는데? 라는 생각만 떠오른다. 교수님과 이야기도 나눴지만, 앞으로는 과학적인 방향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능력도 키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항상 하고 있는 고민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꿈이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꿈을 잃지 않는 사람. 아직은 어른의 포지션이 된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조그마한 목표라도 세워서 나아가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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