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daiv. 열여섯 번째 이야기: 이원행
거대한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두근거린다. 잔뜩 웅크린 몸을 일으켜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모한 용기를 쥐여주기도 한다.
이 용기를 쥔 채로 사람들은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곳을 찾아 떠난다. 연구원이든, 엔지니어이든, 혹은 개발자든, 더 많은 것을 꿈꿔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곳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오늘은 미국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로 실리콘 밸리로의 여정을 준비하는 이원행을 만나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아주대학교 e-비즈니스 학과 19학번이다. 지금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졸업 전에 인턴은 한번 해보고 싶어서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딥다이브는 세 기수 활동했다.
전공이 경영인데, 어떻게 AI에 관심을 갖게 됐나.
군대에 있었을 때 비트코인 자동 매매를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프로펫(Prophet)이라는 간단한 인공지능 라이브러리가 있는데 한 번은 그걸 사용했고, 한 번은 수식을 사용해서 했다. 결과가 안 좋았으면 아마 계속 관심이 없었을 텐데, 생각보다 수익이 높아서 이쪽 공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역 후에는 경영학과에서 e-비즈니스학과로 전과하고, 인공지능융합학과에 복수전공 신청을 했다. e-비즈니스학과는 쉽게 말하면 IT와 경영을 합친 전공이다. 이후에 학교 수업을 따라가고 개인적으로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 다이브 활동도 병행했는데, 재미도 있고 학점도 잘 나오고 있어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때, 아프리카의 백내장 수술을 지원하는 봉사단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백내장을 치료할 때는 100만 원까지 되게 비싼데, 아프리카는 절차를 좀 간소화해서 10만 원이면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다. 물건을 팔거나 모금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지원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한번 일조해 보자는 생각에 시작했다. 10만 원을 목표 금액으로 하고 두 번 정도 물건을 팔았다.
첫 번째는 YB 윤도현 님이 학교 중앙공원에 공연하러 오신 날이었다. 그날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는데, 이때다 싶어 레모네이드를 팔았다. 당시 종이컵 한 잔에 천 원이었는데, 5~6년 전 물가인 걸 감안하면 꽤나 비쌌던 것 같다. 사람이 워낙 많았던 덕분이었는지 매출이 10만 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할로윈을 맞이해서 쿠키를 판 적도 있다. 그때는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을 주 고객으로 판매했다. 안 사시면 양심에 찔리실 것 같은 발언도 하면서 재미있게 팔았다(웃음). 장난치시는 선생님도 많이 계셨고, 정말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셔서 바로 5만 원어치 쿠키를 사 가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내 지갑에 들어간 건 아니고 소중히 모아 기부했다.
무모하지만 성과를 내봤다는 게 지금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을 때 주저하더라도 결국에는 용기를 갖게 되는, 그런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에 미국을 다녀오고 실리콘 밸리에 대한 꿈이 생긴 걸로 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교환학생은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안 했었다. 그런데 당시 주변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누나가 있었고, 거기서 쌓은 좋은 추억들을 듣다 보니 욕심이 났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교에 왔다.
굳이 미국을 간 이유는 도전적인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다. 남들이 다 가는 유럽을 가기에는 뭔가 도전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살아보니 비싸고 불편하고 안 좋은 것들도 많지만,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 미국 기업의 문화도 한 번쯤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실리콘 밸리를 꿈꾸게 됐다. 와중에 아는 선배 중에 한 분이 실리콘 밸리로 가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경험을 듣다 보니 더욱 마음이 확고해져서 도전을 하는 중이다.
미국 문화의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이 있나.
좋았던 점은 나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 중에 19살의 대학교 1학년인데, 카페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었다. 밑에는 26살, 27살의 직원들이 있었다. 들어보니 그 친구가 대단한 걸 했다기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카페를 5개 가지고 있던 사장님이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스카우트해서 매니저가 됐다. 19살의 나이에 뉴욕에서 초봉 평균인 5천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화들을 보고 들으며, 미국은 정말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게 됐다.
단점이라면 개인주의가 심하다. 듣기로 서부 같은 경우는 뒤에서 무시하더라도, 앞에서는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은 반대다. 사람들이 굉장히 차갑다. 특히, 나는 교환학생으로 온 입장이다 보니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뉴욕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서, 가기 전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두고 갔다. 한국어 조교를 신청했는데, 아까 이야기했던 19살 카페 매니저 친구도 한국어를 가르쳤던 친구 중 한 명이다.
혹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직무가 있나.
미국 기업은 인공지능이랑 데이터 분석 그리고 마케팅 직무로 총 3개 기업을 준비 중이다. 현재는 코딩테스트를 준비하는 단계이고 붙게 된다면 미국 실리콘밸리인 산호세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 한국 기업도 몇 군데 넣었는데, 데이터 분석 회사 1개랑 인공지능 회사 두 곳에 지원했다. 데이터 분석 회사는 파이썬 외에 자바로 시각화가 필요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했다.
최근에 빠져있는 게 있나.
미국에서부터 빠져있는 음식이 수육이다. 미국의 타겟(Target)이라는 마트에서 앞다리살이 되게 쌌다. 마트에서 왕창 사놓고 정말 다양한 레시피로 수육을 만들어 봤다. 거의 열 가지가 넘는 레시피를 테스트했다. 심지어 최근에 시도했던 레시피는 고기랑 소금만 넣고 10분을 삶고, 1시간 동안 방치하면 야매 수비드 수육이 완성되는 거였다. 정호영 셰프님을 따라 만든 건데, 예상외로 잡내가 안 나고 맛있었다. 이렇게 여러 개 태스트하다보니 제일 좋아하는 레시피도 몇 개 찾았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있다면.
포르투갈의 포르투가 가장 좋았다. 야경의 선셋도 되게 예뻤지만, 와인이라는 새로운 취향을 찾은 도시다. 포르투가 와인이 유명하다 보니 와이너리 2곳을 다녀왔다. 거기서 와인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와인이 맛있는 건지 배웠다. 와인은 맛없는 거라고 생각해서 항상 콜라만 시켰는데, 정말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나니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유럽 여행이 정말 행복했다.
본인의 삶의 종착지가 어디였으면 하나.
그냥 종착지가 없었으면 좋겠다. 2~3년에 한 번씩 나라를 바꿔가면서 사는 게 꿈이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