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 다이브 Aug 08. 2023

AI에서 LEET까지

Humans of daiv. 첫 번째 이야기: 강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이브를 거쳐 갔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약 100여 명의 팀원들이 수료했다. 지금의 다이브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팀원들과 운영진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AI를 공부했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Project. deep daiv.의 시작부터 세 기수 동안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수료 후 색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는 강다은을 만나 근황을 물었다.


최근에 중요한 시험을 봤다고 들었다.

며칠 전에 LEET 시험을 봤다. 원하는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미래의 검찰총장님이 무슨 말이냐고 하셨다. (웃음) 여행 보내줄 테니까 여행 가서 좀 쉬고 다시 해보라고 하셔서. 지금은 그 갈피에 있다.


AI를 공부하다가 어떻게 LEET를 준비하게 되었나.

원래 주전공이 공공인재학부이다. 어릴 때부터 완전 문과였기 때문에 문과로서 할 수 있는 최고봉인 법조인을 막연히 꿈으로 적어 냈었다. 대학교 입학 후 로스쿨을 진학해 법조인이 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사이버 보안 융합 전공을 신청해서 주전공 외에 학부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강의를 일부러 찾아들었다. 2학년이 끝나고 1년 휴학을 했을 때도 도전하지 않았던 것을 도전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때 영상편집, 제주도 올레길 완주, 각종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거의 마지막에 닿게 된 게 deep daiv.였다.


deep daiv. 매거진 팀으로 지원했는데 인공지능이 뭔지를 아예 몰랐고 매거진을 제작해 보고 싶었던 게 컸다. 인공지능 내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 것도 deep daiv. 들어오고 알았다. 판결문 데이터로 뭔가를 해볼 수 있을 줄 알고 NLP로 시작했는데 한국어가 참 까다로웠다. 그래서 바로 다음 기수부터는 CV로 분야를 바꿨고 결과물이 직관적으로 바로 나오는 게 신기해서 한동안 꽤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프로젝트 깊이가 조금씩 깊어지면서 기초를 탄탄히 다지지 않은 나의 한계를 느꼈다. 깊이 있게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것을 업으로 삼기에는 어려운 영역이라고 느꼈다. 특히 코드를 치는 데 재능이 없었다. 왜 실행이 되고 왜 안 되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팀 프로젝트 진행할 때도 주변에 민폐를 많이 끼쳤다. 그렇게 흥미를 잃고 한번 경험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조금 해본 것들을 곁들여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사이버 보안 분야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사이버 보안과 데이터 프라이버시 관련 규제, 법규, 가이드라인 등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로스쿨을 준비하게 됐다.


LEET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작년 12월 말부터 올해 7월 말까지 학기와 병행하며 LEET 공부를 했다. 인공지능을 공부하다가 LEET 공부를 하게 되면서 느꼈던 게 코딩과 LEET에서 해야 하는 처리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LEET는 논리학 기반의 시험인데 인공지능 구현에 사용되는 코드도 어떻게 보면 논리학의 일종이니까. 그래서 LEET 문제를 풀면 코드를 한국어로 바꿔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LEET가 어려운 이유는 그냥 주는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거의 모든 문제를 최상 난이도로 내니까 시간 압박이 심하다.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시험 성적이 조금 아쉽다.


다이브 이전의 대학 생활도 궁금하다.

1학년 때 많이 놀았다. 그래서 그때 학점이 제일 안 좋았다. 그럼에도 1학년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진짜 재밌게 놀 것 같다. 그때는 고향 친구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내 자취방에 와서 많이 자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랬다. (웃음)


남자친구 생긴 이후로 음주가무를 그만두고 과 생활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과 동기들과 놀기 시작했는데, 홍대에 가서 클럽이 아니라 카페에 가고, 맛집 찾아다니고, 인생네컷 찍고. 그게 너무 재밌었다. 그때 내가 이런 생활이 조금 더 맞는구나 알게 됐다.


2학년 때는 자취방 이사를 전세로 가려고 혼자 알아보면서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때 철이 많이 든 것 같다. 전셋집 구하는 정보를 에브리타임에 올렸는데 스크랩 수가 상당하다. (뿌듯) 그때만 해도 대학생 전세 대출 정보가 없었다. 이후에 나 따라서 자취방을 전세로 이사 가는 주변 사람도 많아졌다. 물론 체감상.


그러다가 학점까지 준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학점은 좋다. (하하) 코로나 때문에 학점을 잘 주던 시기였기도 했고, 학점을 잘 주시는 교수님의 수업을 찾아들었다.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그니까 학점을 잘 준 교수님의 수업을 계속 들었다.


시험은 늘 벼락치기로 준비했는데 효율이 높았다. 효율이 높았던 이유를 굳이 꼽자면 수업 안 빠지고 웬만하면 앞자리 앉아서 집중을 열심히 했다. 근데 시험을 요령 피워 준비하다 보니 머릿속에 남은 게 없어 문제다.

다이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3학년 1학기 복학 직전부터 다이브 활동을 시작했다. 다이브는 거의 다 내가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거진 집필하고, 텀블벅 펀딩 준비, 굿즈 발주, 택배 포장, 홍보 영상, 세미나 준비와 사회자, MT 준비, 스터디와 회의 준비 이 정도밖에 안 했다. (웃음) 뭔가 많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때 전체적인 개요를 만들었다. 근데 사실 리더가 방향성을 잡아줘서 진짜 절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강조)


활동 마지막 무렵에는 너무 정신없이 바빴다. 당시에 삼성 드림클래스 멘토 활동과 현대차 H-점프 스쿨 장학샘 활동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중앙서예연구회 회장도 맡고 있었다. 서예 전시회와 deep daiv. 매거진 펀딩과 다이브 세미나 일정이 거의 겹쳤었는데 그때 과부하가 온 것 같다. 마침 인공지능 공부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 시기 권태기를 못 이기고 그만두게 됐다. 처음으로 네 기수(1년)를 모두 채우는 첫 번째 멤버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매거진 포장 작업을 우리 집에서 해서 매거진이 오랫동안 우리 집에 쌓여 있었다. 얼마 전에 그것을 리더의 집으로 옮겼는데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너무 헛헛했다. 공허해졌다고 해야 하나. 참 열심히 했던 시간을 회상하면서 이제 진짜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참 소중했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번 다이브는 영원한 다이브. 한다영다!


요즘 취미는 어떻게 되나.

다정한 것들이 좋다. 좋아하는 것들이 다 다정하고 포근하다. 기분의 고저 차이가 커 가끔 엘리멘탈의 앰버 같이 굴어도 울지 않는 웨이드가 잘 다독여준다. 다정한 이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황혼녘에 고즈넉이 턴테이블 켜두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악뮤의 <항해> LP판을 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