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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진 Jul 09. 2023

도화낭자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된

프롤로그 : 마포구 도화동에 있었던 복사골마을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桃花洞)에는 ‘복사골’, ‘복사굴’, ‘복사꿀’ 등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의 행정동이자 법정동 지명인 도화동이라는 명칭도 ‘복사골’에서 유래한 것이다. 복사골은 말 그대로 ‘복사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에 복사골을 한자로 ‘도화내동(桃花內洞)’이라 불렀다. 복사골의 복사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밤섬에서 보는 쪽빛 한강 물과 더불어 분홍색의 복사꽃이 어우러져 마치 무릉도원 같았다.”라고도 전한다.

옛날, 복사골에 김씨 성을 가진 노인이 한 명 살고 있었다. 김 씨 노인에게는 얼굴이 아름답고 마음씨 착한 ‘도화낭자’라 부르는 외동딸이 있었다. 김 씨 노인과 도화낭자는 비록 생활이 어려웠지만, 복사골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하기만 했던 부녀에게 어려움이 닥쳤다. 하늘에서 많은 선관(仙官)들이 김 씨 노인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김 씨 노인에게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께서 도화낭자의 아름다움과 착함을 알고 며느리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도화낭자를 모시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김 씨 노인은 매우 당황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외동딸이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된다고 하는데, 딸을 보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외동딸인 도화낭자에게 의지해 살고 있던 김씨 노인에게는 앞이 막막한 일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면서, 외동딸과 영영 이별할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였다.

김씨 노인에게 주고 간 복숭아 씨

김씨 노인과 도화낭자는 마주 앉아 눈물만 흘렸다.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온 선관은 김씨 노인의 마음을 애처롭게 여겨 하늘에만 있는 ‘복숭아씨’를 한 개 주고 도화낭자를 데리고 떠났다. 도화낭자가 떠나고 나서 김씨 노인은 딸의 행복만을 바라며, 집 근처에 선관이 주고 간 복숭아 씨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김씨 노인이 딸을 보내면서 심은 복숭아씨가 움이 트고 싹이 자랐다. 그리고는 꽃이 피고 복숭아까지고 열렸다. 이후 복사골에는 복숭아나무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일대를 ‘복사골’ 또는 ‘복사굴’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매년 복숭아나무에 꽃이 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도화낭자 이야기를 하였고, 딸을 옥황상제 며느리로 보낸 김씨 노인도 복사꽃 아래를 거닐면서 딸을 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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