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준 Jul 05. 2024

중년

음악일기 / 후쿠오카 / 2018. 1. 25

어느 날 기록을 그만두었다 해도 그 사람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페이지를 방문하게 되면, 그곳은 폐허나 무덤 같다. 기록은 일종의 생존 신고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어느 모로 보나 환락가 근처였다. 그저 가격이 적당한 숙소를 택했을 뿐인데...


밤거리에는 짙은 화장의 여자들이 지나다녔고, 군데군데 뚜렷한 목적이 없어 보이는 경찰들이 서 있었다.


딸기가 올라간 어여쁜 디저트들과 눈이 부실정도로 환한 흰색 인테리어로 장식된 디저트 가게 내부에는 중년의 끝쯤에 와있는 남자들이 담배를 물고 앉아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다녔다. 대체적으로 가게의 내부를 밖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저 감에 의지할 수밖에. 핸드폰 검색을 싫어하고, 나같이 우연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실패와 씀씀이를 줄일 방법은 세월의 감 밖에 없다. 


일단, 가격표가 외부에 적혀 있는 라멘, 우동, 돈부리 집은 지나치고, 외관이 허름하지만, 어딘가 정리된 느낌이 드는 정식집에 들어간다. 현지인들 뿐이고, 식탁 위에는 잿덜이가 놓여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 같지만, 나는 고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식가도 아니다.


두툼한 잔에 나온 생맥주는 충분히 시원했고, 기본 메뉴로 보이는 정식은(메뉴판을 읽을 수는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일단, 먼저 갈아 나온 마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밥 위에 얹어 먹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구운 연어의 껍질을 젓가락으로 누르자 기분 좋게 조각이 났다. 미소국과 소금에 절인 채소들은 정갈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실내 흡연이었지만. 


담배를 물고, 얼굴이 불콰해져서, 무심결에 출입구 쪽을 봤는데, 마침 중절모를 쓴 한 중년 남자가 식당을 나서면서, 젊은 여자 종업원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보였다. 뭘까? 열린 문 바깥으로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 방의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