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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Jul 10. 2024

낯선 거리를 걷는다.

음악 일기 / 후쿠오카 / 2018.1.26

방 안의 기온은 보통 14도 내외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와보니 온도계가 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목도리를 챙겼고, 집안의 온열기구들을 하나씩 켰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고, 커피는 내리는 순간부터 식기 시작했다.


다이묘 거리의 빈티지 옷가게에서 반값에 스웨터 하나를 샀다. 형형색색의 실들이 촘촘히 교차되어 불규칙한 무늬를 만들고 있는 디자인의 스웨터였다. 근처의 광장과 공원의 중간쯤 되는 공간에서 스웨터를 껴 입고, 담배를 물었다. 한쪽에서 어른들은 담배를 물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솜사탕을 물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다. 기온이 한국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가을인 것 같기도 하고, 봄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있는 곳은 애써 피한다. 나는 낯섦을 위해 여행을 왔는데, 익숙함이란 방해요소일 뿐이다. 자판기의 지시에 따라 계란이 올라간 라멘 그림을 누른다. 표를 카운터에 갖다 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로 라멘 한 그릇이 올려진다. 국물은 남기고, 면은 다 건져 먹고 다시 거리를 걷는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역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빛을 발한다. 고택들과 신축 건물들과 신사들이 어색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고, 나는 그 앞을 여러 번 지나친다. 곳곳에서 동백의 바알간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라든지 무라든지 자주 먹지 않는 식재료들이 식당에서 자주 나온다. 참치회 위에 마와 김을 얹고 간장과 와사비를 찍어 먹었다. 무작정 내린 어느 지하철 역의 동네 식당에서였다. 앞 테이블에서는 중년 남자 셋이 사업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자, 건설현장 소장복을 입은 남자가 계산을 했고, 양복에 서류 가방을 든 남자 둘이 그 앞을 지나가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스미마셍.


어느 대형 마트에 들어가 사과주스 하나를 사서 나와 코카 콜라 로고가 새겨진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코트를 입지 않아도 될 만큼 따뜻한 날씨였다. 지칠 때면, 도토루 커피나 츠타야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아직까지 곳곳에 남아 있는 담배 자판기 앞에 서서 담배 한 갑을 뽑는다. 자판기에 비치된 다양한 담배들의 색감이 보기 좋다. 그런데, 이거 미성년자도 너무 쉽게 담배를 뽑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좋은 세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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