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준 Jun 23. 2024

도교는 비 5

음악 일기 / 도쿄 / 2017. 10. 19

모르는 길을 무작정 걷는 것은 일종의 여행 습관이자 병이다. 오차노미즈의 한 기타 숍에서 가격표보다 500원 할인된 가격에 기타를 사고, 역시 흥정이나, 깎는 것에는 재능이 없다, 소변을 해결하러 근처 병원의 화장실에 갔다. 막간의 와이파이로 공원으로 가는 길을 대충 봐두고, 무작정 걸었다.


10분쯤 지나고부터는 기타가 짐으로 느껴진다. 아무리 오늘 산 기타라고 할지라도. 모든 풍경이 낯설다. 친숙한 무언가가 찾고 싶지만, 낯선 얼굴과 텍스트에 나는 또 한 번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다 발견한 흡연 구역에서 비로소 친숙함 내지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구역 내 마련되어 있는 자판기에서 사과주스 하나를 뽑았다. 자판기에는 해피 프라이스 110엔부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나오는 길에 다소곳이 비를 맞고 있는 플라스틱 병뚜껑들과 마주쳤다.


언덕을 오르고, 골목을 지나고, 다시 언덕을 오르고. 앉고 싶고,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비가 오고 있다. 얄궂게도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우산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은 연잎들이 보였다. 무심코 쳐다본 저수지의 물속에는 만화에서나 볼 법한 대형 잉어들이 살고 있었다. 


단지 쉽게 마주치기 힘든 풍경이라는 사실만으로 한동안 넋 놓고 잉어를 쳐다보고 있었다. 잉어의 위로 같은 것을 느끼며...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있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다시 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해피 프라이스의 사과 주스를 다 마셨기 때문이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nowhere m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