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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Feb 21. 2024

10. 알. 아. 서

알. 아. 서.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뜻밖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얼마 전 건축가 부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남편 같은 사람 둘이 같이 산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건축가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

이 글을 읽으시는 건축가분들… 죄송합니다)


두 분의 첫인상은 굉장히 여유롭고

서로에게 너그러워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MBTI가 같다.

주변에서 찾기 힘든 MBTI 동족을 만났다.

그래서 그날 그렇게 편안했나 보다.)


나름의 호기심을 채워가고 있을 무렵.

나는 함께 일하는 건축가 부부의

가사 분담이 궁금해졌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서'였다.

남의 집 남편은 집안일을 알아서 하는 편이란다.


내가 우리 집 남편에게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알. 아. 서

어찌 그런 남편이 있을 수 있지?

당연하단 듯 대답하는 저 여유.

충격과 배신...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맘)

 

그리곤 하나의 일화가 떠올랐다.

우리 남편은

달팽이인 주제에

집안일을 시. 켜. 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세세하게.


어느 날 욕실에 들어갔더니

빨래 모으는 바구니가 쓰러져있고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빨래는 정리되지 않았다.

왜? 내가 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시켰다.


빨래 바구니 좀 제자리에 세워 줘.

나는 나름 정확한 문구라 생각했다.


자 생각해 보자.

내가 빨래 바구니를 쓰러트려 빨랫감이 바닥에 떨어졌다.

누군가 나에게 빨래 바구니를 제자리에 놓으라 했다.

그렇다면.

널브러진 빨래를  정리하고

빨래 바구니를 제자리에 올려놓는 게 상식 아닌가?


떨어져 있는 빨래 더미는 그대로

바구니만 세워져 있었다.

왜? 내가 세세하게

'자 떨어져 있는 빨래를 빨래 바구니에 담고

빨래 바구니를 제 자리에 세워 놓으시오.'라고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전 식탁에 저녁을 차리며

아들에게 부탁했다.

"아들아 식탁에 숟가락 좀 올려줄래?"

그랬더니 정말 식탁에 숟가락 2개올려져 있었다.

"아들아 젓가락은?" 했더니

아들 왈

"엄마가 숟가락 올려 달라 그랬잖아?"


아놔.

콩 심은 데 콩 나고 박군 심은 데 박군 난다.

콩. 콩. 박. 박.


이쯤 되면 드는 합리적 의심

내가 이상한 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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