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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Sep 06. 2024

생각이 기도다


우리는 매일 생각으로 작은 기도를 한다.

이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

이뤄졌으면 하는 기도


그 모든 기도는 언젠가 이루어진다.


불행히도

이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는 늘 더 간절하다.

더 강하게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기도는 늘 힘이 없다.

작은 염원이기 때문이다.


걱정에 더 많은 힘을 싣는다.

그래서 걱정은 늘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좋고 나쁜 것은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가 생각한 것을 의식세계로 출력한다.

그래서 생각은 기도와 같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늙고 아픈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파서 죽기 전에 얼마나 힘들까.

중병에 걸리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하지?

일상생활도 버거운데 나에게 더 힘든 일이 생기면 과연 나는 살 수 있을까?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생각에

허우적 그렸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꼭 배가 아파서 중간에 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상가화장실을 이용하곤 하는데

건물 2층 한의원 맞은편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있으니

옆 칸에서 할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아고고고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지만

기질이 예민한 나에게는 마치 내 미래의 모습 같기도 해서 서글펐다.


나이 들면 지금 보다 더 힘들 텐데

움직이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그럼 난 어떻게 살지?


다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 내가 또 불행의 굴레에서 스스로 헤매고 있구나. “


예전과 달라진 점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자주 확인하고

자각한다는 것이다.


“ 내가 또 이렇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구나. “

집에 와서 와서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생각은 기도와 같은데 이뤄지면 안 되는 기도를 하고 있구나. “


어느 날 티브이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한 집에 아들 셋이 있는데 한 명씩 차례로 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그 아들 셋을 병 수발하는 어머니의 사연이었다. 기구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속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 저 불행은 누구의 걱정으로부터 시작되었을까? “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왼쪽 머리뼈가 없는 전직스튜어디스의 사연을 다룬 채널이다.

평범한 어느 날 출근하는 길에 뒤로 넘어졌는데 그 후로 의식을 잃었고

일어나 보니 뇌손상으로 큰 수술을 받아 언어장애가 생겼다.


영상을 하나하나 보면서 조금 놀랐던 점은

스튜어디스 시절 아버지가 딸의 비행기사고를 너무나 걱정하셔서

매일 비행기사고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자료를 찾아보셨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걱정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도 어쩌면 좋은 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에 초점을 맞춘 생각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시아버지께서 전화가 오셨다.

어제오늘 남편이 체했는데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하신 것이다.

“ 아픈데 일하다가 쓰러지면 어떡하냐. “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듣기 거북했다.


부모로서 자식이 왜 걱정이 안 되시겠냐마는

불행을 생각하는 걱정보다

잘될 거라는 긍정의 걱정을 해주는 것이 나을 것같다.


생각은 기도와 같기 때문에.

그로서 불행과 행운을 불러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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