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모드가 된지 꽤 오래 되었다,.
일상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전부 줄였다.
밥먹는 에너지
외출하는 에너지
누군가를 만나는 에너지
모든 것이 절전상태다.
유튜브를 보다가 옛 시트콤 거침없이하이킥에
나문희 여사님이 비싼 음식을 많이 먹는 모습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 돈이 많이 나와도 좋으니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많이 드셨으면 좋겠다."
왜 그 말이 자식이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공감이 갈까.
예전처럼 많이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서러움 같은 것들을 나는 알 것 같다.
어릴적 부터 약해서 매번 위장장애로 고생은 했지만
20대 초반에는 잠깐 이나마 잘 먹던 시절이 있었다.
매번 먹을 것을 조심해야 했었는데
확실히 혈기왕성한 나이라서 그런지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런데 그런 시절도 잠시
금방 위가 헐고 지방간이 되어
그런 먹방은 허상처럼 지나갔고
이후에는 식이성 공황장애 증상으로
아예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조금만 신경쓰고 힘들면
몇 숟가락 못 먹는다.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 저렇게 안 먹히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말한적도 있었다.
내 입장이 되면
차라리 살찌더라도 잘 먹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먹는 것이 절제가 안되는게 힘들어서 그런 말을 한다.
다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생명의 위협을 매번 느끼는 시간들을 지나오다 보니
그래서 난 건강앞에 겸손하고 삶에 겸손해졌다.
자랑할 것도
크게 실망할 것도
비관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한 것 같다.
특히나 몸이 너무 예민해져 있어서
절전모드를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찌보면 나이에 맞지 않는
노숙한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이들의 sns를 보고 있노라면
" 나는 정말 늙은이 인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 너무 익숙해 졌다.
나름대로 자기계발에 힘쓰고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있지만
너무 안전하게만 살아가려고 하는건 아닌지
염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에너지가 들어가는 부분들은
철처히 차단하고 싶으니 말이다.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내는 일도 거의 없다.
감정이 메말라 가는건지
성숙해 가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이런 절전모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다양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무채색 옷만 입는 사람 같은
그런 느낌 이라고 할까?
언제나 단조로운 색상이다.
다행히 우울증에서는 많이 빠져나와서
일상이 우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감정을 느낄 틈은 없다.
스스로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나에게 안전지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웃어본지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외로워 본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데 그 틈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혼자만의 절전모드가 많이 편해지고 익숙해 진듯 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정말 삭막해 질텐데..
이런 걱정도 든다.
이미 너무나 삭막해져 있지만.
더 이상 삭막해지면 안될 것 같다.
나도 세상도.
지금은 나의 에너지를 아끼고 아끼면서 생존과 건강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다시 방전되지 않으려면
절전모드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에너지 공급원을 늘려야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취미라고도 하고
봉사라고도 하고
사랑이라고도 하고
좋아하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전부 관심이 없지만
이 글쓰기 만이라도 나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전혀 몰랐다.
활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희망을
활기차다
활력이 있다.
그런 단어속으로도 들어가고 싶다.
만년 절전모드 일 수는 없지 않은가.